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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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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Jul 04. 2021

나는 이기적인 모유수유부입니다(1)

나와 아기(5)

나는 모유수유부이다. 우리 아이 13개월, 나는 여전히 모유수유를 고집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모유수유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아가 사랑이 유별나시네요.”

“어떻게 모유수유를 아직까지 하세요?”

“사랑이 넘치시네요.” 등등의 반응이다.  



출산 이전에 엄마가 아이를 비스듬히 안고 모유수유를 하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자애롭고 인자한지.

그건 아예 모성의 결정체같은 모습이다.

아기를 너무 사랑하고 그 사랑을 한없이 주고싶은 마음에 행하는 성스러운 인류의 행위이자 희생적이고 자애로운 모성의 행위.


‘모유 수유.’



헌데 나는 위에 열거한 모든 것과는 너무 먼 사람이다. 누구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성스럽거나, 자애롭거나, 모성이 유별나거나 아기를 너무 사랑하지도 않는다.

(아주 자~랑이다.ㅋㅋ)



그러나 나는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

조금은 신기한 모유수유러?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기존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유수유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과정과 다른 모습으로 나는 아이를 젖 먹이는 엄마가 되었다.



내가 모유수유를 하게 된 것은, 아니 모유수유 성공에 집착하게 된 것은 산후조리원이 그 시작이었다.



“야. 누가 조리원 천국이랬어. 말 한 사람 나와.”


하고 멱살을 쥐고플 만큼. 내 생각과 조리원의 생활은 그 성질이 아예 달랐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린 건 여유로운 삶과 커피. 출산으로 지친 몸을 조용히 의자에 뉘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남이 해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

열달 동안 아이를 품느라 힘들었던 몸에서 아이를 낳고 아주 가뿐하게. 바람을 솔솔 맞으며 살랑살랑 산책하는 모습. 그런 것들.


하지만 현실은…

우선 생존부터 하고 봐야하는 전쟁같은 공간.


아이를 낳고 너덜너덜해진 밑.

너덜너덜해져 변을 보는 것은 곧 0꼬를 찢는 기분이라 신호가 오면 덜덜덜 떨리는 마음.

큰 아이가 나온 뒤 덜렁덜렁한 뱃가죽과 아직 임신 7개월처럼 들어가지 않는 배. 커진 흉통.

손발목의 시려움과 진통하느라 몸을 뒤틀어 걸을 수도 없이 아픈 허리.


그런 최악의 상태인 몸을 그나마 어찌저찌 수습하는 전쟁같은 공간이었다.


 



나는 후굴자궁인지 아이가 자리를 잘못잡았는지 만삭일 때부터 허리가 너무 아파 걸을 수도 없었다. 예민함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는 임신한 동안 온갖 증상들을 예민하게 다 겪었다.


위경련, 골반통, 뱃살 틈 등등 여러 고통들이 나도 여기있다며 서로의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치골통은 그 중에서도 정말 가장 나를 괴롭게 하는 통증이었다. 한 발 한 발을 디딜때마다 나는 치골이 칼로 찔린듯 너무나 아팠고 그 길로 한의원에 거의 기다시피해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한의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 통증은 무통주사를 맞을 때도 역시 계속되었는데 다른 곳은 아프지 않아도 그 부분만은 시리게 아픔이 느껴졌다. 아무튼 출산을 하면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희망을 가졌는데 출산을 하고나서도 그 통증은 계속해서 생생하게 나를 괴롭혔다.



누군가는 조리원을 천국이라 했지만 나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출산 후 찢어진 밑과 너덜너덜한 몸, 낮아진 자존감, 이제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 등등이 나를 괴롭혔고 가뜩이나 생각이 많은 나에게 출산 후 주어지는 붕 뜨는 시간들은 나를 더 괴롭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살랑살랑 산책. 여유. 커피. 그건 전부 불가능이었다.


밑으로는

“임신의 유일한 장점이 뭐예요?”


물으면

“10달간 생리 안하기요.”


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열달치 생리- 이건 명칭이 ‘오로’랜다.


그 오로가 오로로로로로로로로로로로 쏟아졌다.

첫날은 와르르르르르르 쏟아지다가 점차 이름처럼 오로로로 쏟아져서 참 신기했다.


태어나 처음. 아니 처음이 아니지 0세에서 2세경 입었던 기저귀를 추억하며 30대가 넘어 그 오로로로를 막기 위해 기저귀를 차고.


아이를 낳을 때 찢어진 ‘질’을 매일 우스꽝스럽게 누워 적외선 치료기로 쬐어줘야 했다. 그리고 좌욕을 했는데 그게 유일하게 아프면서도 즐거운. 힐링의 시간.


나머지의 시간은 오직.


‘모.유.수.유’


그에 맞춰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었다.  





조리원 입소부터 행해지는 모유수유에 대한 위대한 교육들은 평생 무언가를 목표로 살아와서 목표가 없으면 헛헛함까지 느끼는 내게 엄청난 의미있는 목표를 던져주었다.


모유수유 성공을 목표로 나는 밤낮없이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유했고 젖양을 늘리기 위해 유축했다. 수유후 바로 유축을 7분씩 하라고 해서 정말 시킨 대로 시킨 만큼 했다. 타이머로 7분을 맞추어 수유 후 7분 유축 기계처럼 움직였다. 젖소가 된 느낌이 나긴 했지만 이미 출산으로 내 몸은 짐승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지 오래라 괜찮았다.

젖소가 된 느낌을 선사해주는 유축기



매일매일 과제를 하고 매일매일 예습 복습을 해내던 성실함으로 수유-유축 이어하기에 내 성실성을 바쳤다. 임신 기간 동안 나는 그 잠시 쉬는 것이 아까워 공인중개사 공부도 하고 있었는데 조리원의 그 2주 동안 나는 시험 공부를 하겠다고 두 짐을 바리바리 쌌었다.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그런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너무나 바빴다.



코로나로 옆 사람과 왕래할 기회도 없었고 한없이 주어지는 시간 중 의미있고 생산적인 유일한 일. 그게 모유수유였기에 나는 그걸 목표로 경주마처럼 달렸다.

 주어진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내게 없는 ‘모성’과 왜 내게 그것이 아직 없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젖에 대한 집착, 어떻게 해야 모유수유에 성공을 할지만을 생각했다.


피곤했지만 아이에게 최대한 많이 먹어야,

즉 ‘직수’(이 직수라는 명칭도 웃기지 않은가. 직수정수기처럼 직접 젖을 주는 걸 ‘직수’라고 한다.)를 해야 젖양이 늘어서 새벽에도 빠짐없이 수유콜을 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나는 아이를 사랑하기보다는 그냥 완벽주의와 이상한 성실성,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마의 버릇 때문에 성실한 모유수유러가 되었다.  


조리원 초반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 모유수유 자세를 취하지 못해서 지도해주시는 분께 그 방법을 겨우 익혔다.


“자 이렇게 누우시고요. 베개를 받쳐주시고 네, 그렇게 누우시고 젖을. 물리세요.”


젖을 물리고 젖을 주는데 너무 신기했다.


오른쪽을 물렸는데 왼쪽 젖이 폭발한다. 줄줄 흐른다 !!


“어머머 이건 왜 이러는 거예요?”

“원래 한쪽 젖을 물리면 한쪽 젖도 같이 나와요. 그래서 수유 패드를 이렇게 ~ 붙여야 옷이 젖지 않아요.”


우와 놀라웠다. 내 몸에서 새로운 음료가 나와서 달달한 걸 애가 먹고 큰다.

근데 더 놀라운 건 그건 대칭으로 나와서 한쪽만 줘도 한쪽도 알아서 줄줄 흐른다.


대칭 음료수가 내 몸에서 솟아나다니 놀라운 일이다.



옛날 교회 다닐 때 듣던 노래가 자꾸 생각나서 나는 젖을 주다가 웃었다.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 멜로디는 모르겠는데 그 가사인지 어느 기도의 구절인지가 생각나서

아 그래서 젖이 흐르면 그 땅은 이런 모습이겠구나. 젖을 주며 계속 그 가사를 떠올렸다.


수유-유축-마사지 잠깐/ 모유수유 강의 듣기/ 밥

수유-유축-마사지 잠깐/ 적외선쬐기/ 밥

수유-유축-마사지 잠깐/ 좌욕/ 밥 -수유.유축…


이렇게 하면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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