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기(4)
나의 하루는 참 바쁘다.
나는 육아휴직을 했다. 다니던 직장을 합법적으로 잠시 쉬기로 했다. 나는 아기를 보기 위한 보육을 목적으로 휴직을 냈고 나는 직장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직을 한 기분이다. 다니던 직장이 학교였다면 이제는 ‘집’이라는 공간.
나는 그곳으로 매일매일 출근한다.
아니지.
나는 직장에 살고 있다.
아. 너무 힘들다.
오늘은 특히 더 힘들었다.
나는 ‘육아’를 하려고 직장을 쉬고 있는데 직장이 집이 되고보니 이게 참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주 잡스러운 것부터 중차대한 일까지. 몇가지 to do 리스트 적고 하루에 몇 가지를 끝내 놓는 것이 가능했던 전 직장과 달리 현 직장은 to do 리스트에 적을 일이 아주아주 많고 그 리스트에 같은 일이 매일매일 리셋되어 채워진다. 매일 해도 그 일을 또 매일 해야한다. To do 리스트를 적으면 아마도 A4용지 한 장은 거뜬히 채울 것 같다.
청소기 돌리기, 침대 이불 정리하기, 거실 장난감 치우기, 책 꽂아두기, 수건 개기, 리모컨 정리, 머리카락 물티슈로 닦기, 아이 매트 닦기, 식세기 그릇 정리, 컵과 그릇 정리, 밥하기, 빨래하기, 건조기 돌리기, 건조기 못 돌리는 것 널기. 등등등 가사일에는 빨래/ 청소/ 요리 등등으로 이름붙일 수 없는 잡다한 것들도 많다. 기저귀 잘 접어서 기저귀 정리대에 버리기. 밥을 먹은 뒤 음쓰 용기에 음쓰 넣기, 화장실에 떨어진 머리카락 모으기 등등
아침에 일어나 나는 먼저 하기 싫은 일들을 끝내 놓는다.
우리집에는 로봇 청소기도 있고 식기 세척기도, 건조기도 있다. 자주가는 맘카페에서 ‘청소기 이모님, 식세기 이모님, 건조기 이모님 들였어요.’라는 글들을 본 뒤 그 가전 제품들은 ‘이모님’이라 칭해지며 의인화될만큼의 가치있는 일을 하여 엄마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존재구나. 싶었다. 조선시대 규중칠우쟁론기(바느질에 쓰이는 여러 도구를 의인화한 가전체 소설) 그걸 쓴 사대부 여인네가 이런 느낌으로 그런 의인화를 한 것일까…
그런 이모님이라면 응당 들여야 내가 살겠다 싶어서 굳이 고집을 부려 여러 이모님들을 하나씩 들였다.
이모님들은 일을 도와주시지만, 그래도 나는 힘들다.
먼저, 일어나자마자 나는 우리집 vip의 아침을 준비한다. 그나마 요리 실력이 없어 사먹이는 데도 먹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밥풀을 손으로 짓이기고 엄마도 먹어보라며 국에 손을 푹 집어넣어 퍼내는 vip의 아침을 먹이고 나면 그 자리를 닦는다. 한 번에 다 닦으면 좋은데 분명 다 닦았는데도 행주를 빨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면 밥풀떼기가 몇 알 꼭 붙어있다. 오늘도 또 놓쳤다.
아. 꼼꼼하지 않아서. 나는 일을 꼭 두번한다.
그래서 힘들다.
그 다음으로는 청소기를 한 번 돌린다. 로봇 청소기 이모님께 단독으로 몇번 부탁도 드려봤지만 왠지 자꾸 문 턱이나 카페트, 베란다와 방 사이쯤에서 계속 길을 못찾으셔서 나는 내 손으로 다이슨 청소기를 빨리 돌리고 만다. 이모님..할부 남았는데..
아무튼 나는 청소기를 돌리고서는 빨래를 한다. 수건과 속옷/ 아기옷/ 일반 옷을 분리하여 빠는데 신기하게 수건과 속옷은 급속도로 빨리 쌓인다. 아기옷은 2위. 나는 수건과 속옷 빨래를 돌리고 자리에 잠시 앉는다.
다음으로는 식세기 이모님이 열심히 일한 결과물들을 정리한다. 이모님 안에 들어있는 깨끗한 그릇들을 비워놓아야 오늘 더러운 그릇을 다시 넣어놓을 수 있어서 그걸 다 정리해야 한다. 근데 그게 은근히 또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일이다. 이모님- 정리까지는 어려우시겠지요..? 그것까지 가능한 이모님이 나오면 당장 사러갈거다.
거실을 돌아보니 너저분한 아기 장난감들이 보인다. 나는 참 신기하게 화장실이 더럽거나 현관이 더러운 것 너무 괜찮은데 거실이 더러우면 기분이 좋지 않아서 항상 거실을 청소한다. 아기 장난감을 보이지 않는 박스에 처넣는다. 결국 청소한척 안 보이게 숨긴 것 뿐이지만 그래도 손이 많이 간다.
밥풀과 마찬가지로 나는 정리를 다했는데 돌아보면 한 두개가 빠져있어서 꼭 한번 일을 더한다. 힘들다.
나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쉬고 있는데
‘육아’와 ‘휴직’ 어떤 것도 나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다.
‘육아’가 아니라 ‘가사’를 하고 있고 ‘휴직’이 아니라 ‘재입사’ 혹은 ‘재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육아휴직이 아니라 가사재직자이다.
가사일은 또 하나 신기한게 안 한 건 드럽게 티가 잘 나는데 한건 티가 안난다. 아파서 더러운 걸 지나치고 지나치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집이 엉망이 되어있다. 안 하면 ‘진짜 집구석 한 번 더럽네.’싶은데, 열심히 하면 그나마 지금과 그대로 같은 상태 유지-. 거의 본전치기다.
오늘 나는 몇가지 가사일을 놓치지 않고 하느라 아이에게 등만 보이다 하루를 보낸 것 같은 마음에 아이에게 문득 미안해진다.
‘엄마 놀자’
(아이는 말을 못한다. 그래서 내 옷을 잡아 자기를 보라고 잡아당기거나 내 등뒤에 와서 서거나 등의 몸짓으로 엄마 놀자고. 아니 그 말보다 더 열렬히 놀자고 구애한다.)
“잠깐만 ~ 이것 까지만 하고”
(내 손은 바쁘다. 설거지 설거지. 식세기를 돌리거나 식세기 그릇 정리 정리)
‘엄마- 놀자니까. 이것봐봐 재밌겠지?’
“우와-신기하다(쳐다보기 3초).
근데 잠깐만 엄마 이거까지만 하고 놀아줄게”
(내 손은 이때도 바쁘다. 빨래 빨래 개기 개기 혹은 널기 널기 )
‘엄마. 엄마. 심심해’
“우와 그랬구나(쳐다보기 2초).
잠깐만 이것까지만 치우고”(거실의 너저분한 것을 치운다 수그렸다 일어났다 일어났다 수그렸다)
참고 참다가 아이의 한계가 다다르면 아이는 운다.
‘내가 심심하다고 했지! 제발 그만 좀 하고 나좀 봐.
으앙’
그때서야 겨우겨우 돌아봐주는 식.
완벽주의 성향이 짙은 편인 나는 가사 재직중에 늘 이런 식이다.
내가 마음에 들게 가사 일이 다 끝나야 아이에게도, 내게도 시간을 주는 버릇. (결국 아이에게도 시간을 덜 주지만 내게 시간을 주는 시간은 그래서 거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에게 등을 오래 보였다.
싱크대에서. 거실에서. 화장실에서. 안방에서.
베란다에서.
육아를 위해 휴직했는데 어쩌다 가사 재직에 꽂혀서 아이에게 긴 시간 등을 보이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루종일 기다리다 자기 혼자 재밌는 걸 찾은 아이는 내 가방에 손을 넣어 만원 남짓한 립글로즈를 꺼내 손가락으로 질근질긋 주무르고 있다.
“으악- 뭐하는 거야. 이거 엄마꺼를 왜 만져. 이거 만지면 안된단말이야 (진심으로 조금 짜증이 섞인다)”
‘엄마가 안놀아주니까 그렇지. 겨우 재밌는거 발견했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네’
아이가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더욱 악역이 된 듯.
내일부터는 내 ‘육아 휴직’의 본질에 맞게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써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너저분한 가사 일을 조금더 내려놓길.
아이에게 등이 아니라 내 정면의 몸으로 ‘눈’을 보여주리라 다짐한다.
하루종일 아이의 등 뒤를 따라다니며 뭔가를 했는데 정작 아이와의 본질적 대면 시간은 얼마 확보하지 못한 나에게, 조금은 질타하는 마음으로 내일은 본질적 대면시간을 0.3배 정도 늘려봐야겠다.
(또 너무 긴건 자신이 없으므로 0.3배 그거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