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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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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Jun 25. 2021

좋은 어른(2)

나와 아기(3)

애를 안고 이 가방을 들고 유모차를 어떻게 들거냐며 자기에게 가방을 다 넘기라고 했다. 내가 망설이자 아저씨는 아이를 안아주겠다며 자기도 나와같은 4호차 특실이니 걱정말라고 안심시켰다. 따뜻한 아저씨는 그렇게 우리 아이를 안아주었고 그래서 나는 유모차도 접고 유모차도 싣고 캠퍼백도 들고 내 자리로 갈 수 있었다. 아저씨는 아기에게 걱정말라는 미소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무얼 알기라도 하듯 아저씨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나는 아이와 빠른 시간 내에 착석할 수 있었다.내가 저 뒤에 있으니 혹시 뭐라도 필요하면 자기를 부르라는 아저씨.



 나는 모르는 타인에게 그리 친절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나처럼 힘들어하면 그렇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문득 생각에 잠겼다.




또 한명의 기차 아저씨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방학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파리-스위스 여행을 떠났었다. 돈없던 가난한 대학생에서 직장을 갖고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며 나는 미친듯이 여행을 다녔다.

‘이거 못 보고 죽었으면 어쩔뻔했어.’ 하는 순간이 늘어갈 때마다 나는 한풀이를 하듯 여행지를 잡았고 그래서 더 샅샅이 좋은 곳을 찾아 다녔다. 파리에서 혼자 여행을 마치고 스위스로 혼자 이동하던 길이었다. 빨간색 캐리어를 끙끙대며 끌고 정신없이 면세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겨우겨우 타게 된 떼제베 열차 안. 바로 내 옆자리에 탄 아저씨. 그 스위스 아저씨도 역시 중년이었는데 페도라같은 모자를 썼던 것이 대전역 노신사 아저씨와 닮았다. 소매치기를 당할까 전전긍긍하고 혼자 다니는 몸이라 온갖 경계심으로 가시를 세운 내게 아저씨는 말을 걸었다.


 파리의 차갑고 냄새나는 분위기. 몇몇 사람들이 동양인을 경멸하던 눈빛에 여러번 상처를 받았기에 나는 ‘너희가 날 이유없이 싫어한다면 나도 그러고 말거야.’라며 나 또한 뱁새눈을 치켜들고 도도하고 냉정한 사람인척 하며 다녔는데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나니 나는 정말 경계심 넘치는 재수없는 애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주시다니.

 

“너 어디가니?”


나는 그렇게 가까이서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들을까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영어 듣기평가가 즉석에서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저 스위스 취리히에 가요.”


쏼라쏼라 중간중간 알아듣는 말과 못알아듣는 말이 난무했는데 아무튼 그 아저씨는 아주 따뜻한 수다쟁이였고 그래서 나는 파리의 냉혹함을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너 직업이 뭐니?”

“저는 학생들 가르치는 교사예요.”

“ 너 얼마 버는데?” (아저씨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고 다했다.)

“저.. 200조금 넘게요?”(달러로 바꿔서 말한 것 같다…)

“아, 그래? 우리는 청소부도 400만원 넘게 버는데. 놀랍다.”

내 쥐꼬리 월급에 다시금 현타를 느꼈다..그래 청소부도 그만큼 버는구나…


그래도 나는 그건 충분하며 나는 아이들에게 코리안이라는 언어에 대해 가르쳐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영어 실력은 짧았고 아저씨는 거의 내가 말할 시간을 주지 않고 수다를 이어갔다.


“너도 놀랍지? 우리 스위스라는 나라는 그렇게 돈이 많아. 돈의 중심지라고나 할까… 그래서 물가가 비싸기도하지 그건 왜그러냐면~~. 그리고 초콜릿이 맛있어. 초콜릿은 어디 회사의 초콜릿과 저기 회사의 초콜릿이 맛있는데 나는 특히 그 초콜릿을 좋아해 한번 꼭 먹어봐.”

수다의 중심 소재 스위스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중심이 되는 말이 없었는데 나는 기특하게도 영어로 그 말들을 대충 다 알아들었고 적절히 리액션하고 피드백을 했다.

아 나는 자랑스러운 주입식 영어교육으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자부심이 느껴졌다.

영어는 수능 영어듣기평가로 종친 지 오래… 국어 한 길만 디립다 파댄 국어 선생인 내게 그 오랜 시간의 영어 대화는 아주 드물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긴장되고 힘이들어 중간 쯔음에는 이제 그만 말하셨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아저씨의 수다는 멈출 줄을 몰랐고 그래서 나는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소소한 여러 정보들을 반 강제적으로 알게 되었다. 혼자 보낸 일주일의 파리 여행이 외롭긴 했었는지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며 웃음이 픽픽났다.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네가 스위스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리라 확신해.”


아무튼 파리에서 스위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수다를 떨었고 이제 내릴 때가 다가왔다. 내 숙소가 어디냐고 물을 때는 조금 경계의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그냥 알려드렸고 이 곳으로 가야해서 긴장된다고 말했다. 아저씨가 빨간색 캐리어를 낑낑대며 기차 밖까지 내려주고 나는 너무나 고맙다며 감사인사를 전했고 우리는 인사했다.

‘잘가요~ 착하고 따뜻한 수다쟁이 아저씨.’

 그리고 내 갈길을 가려고 맵을 켜고 걸으며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아저씨가 헐레벌떡 나를 찾아 돌아왔다.

“야, 여기 아니야! 너 트램탄다고 했잖아 내가 여기 내려가보니까 거긴 택시타는 데고 너는 트램 타는 이 길로 가야돼. 너무 복잡해서 못찾을까봐 내가 이렇게 왔어. 저기 보여? 저기 계단 있잖아 거기서 꺾고 그다음 오른쪽으로 걸어가 그럼 정류장이 딱 나와. 너 택시타는 길로 가고 있었잖아 그럼 못찾아 여기 너무 복잡해.”


“네 아저씨? 아 그렇군요 저 엄청 헤맬 뻔 했네요. 너무 고마워요.”

그 고마운 마음을 땡큐베리머치, 땡큐라고밖에는 전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게…나는 아저씨에게 고마웠다.


더운 날이었는데 , 문득 나는 ‘나라면 생판 모르는 초짜여행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러 가던 길을 한참 돌아 걸어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아저씨에게 더 고마웠다. 아저씨의 말대로 정말 스위스는 평화롭고 꿈같은 나라였고 아저씨의 목소리가 여행 예언처럼 계속 내 귀를 쫓아다녔다. 스위스의 좋은 곳을 갈 때마다 목소리가 맴돌며 생각이 나 웃음이 터질 정도로.


아저씨 목소리가 맴돌아요 평화롭고 행복한 스위스


대전역 노신사에게서 그 아저씨를 떠올린 것은 ‘기차, 낯선 타인, 페도라 모자’ 등등의 공통성 때문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기 떄문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한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하등의 이익, 경제적 이득이나 그 어떤 이점도 주지 못하는 일에 발 벗고 뛰어드는 것.


그래서 냉혹하고 참담한 세상에서 가시돋힌 사람에게 “야 그러지 않아도 돼.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힘들게 가시 세우지 않아도 돼.” 알려주는 것. 그래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마음 한켠뜨듯하게 데필 수 있는 것. 그게 좋은 어른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이 너무나 잘못됐고 사람들은 너무나도 나빴다고 매일같이 뉴스에서 떠들어대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아직은 사람들 마음에 따뜻함이 남아있음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어른이고 좋은 사람이다.

 



대전역 아저씨가 광명역에 도착할 무렵 다가왔다.


“어이구, 어디까지 가. 나는 여기서 내려.”

“네, 아저씨 서울로가요. 여기서 내리시네요. 너무나 감사했어요. 저 진짜 혼자 기차 못탈 뻔 했어요.” 

(이건 영어가 아니라서 잘 표현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가 서울까지 가면 좋은데 여기서 내리네. 꼭, 내리기 전에 주위 사람에게 부탁해. 꼭이야. 애를 혼자 매고 가방들고 유모차를 어떻게 내리려고 해. 혼자 내리지 말고 꼭 먼저 부탁해 알았지?”


“네 아저씨, 너무나 감사해요.”


“그래그래. 혹시나 애 다칠까봐. 애기 다치는 것보다 낫지않어? 그래그래  잘가 아가야. 할부지 간다~”


도움을 주고 또 거기에  a/s까지 친절하게 해주는 것도 스위스 아저씨랑 너무 닮았다. 수다쟁이인 것도.


아저씨는 광명역에서 내렸다. 성심당에서 힘겹게 힘겹게 산 순크림빵 하나를 쥐어드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뒀는데 내리고나니 후회됐다.

그냥 드릴 걸 이거 진짜 맛있는데…

집에서 순크림빵을 먹으며 아저씨 드릴걸. 또 후회하며 웃음지었다.



나도 그런 좋은 어른이고싶다.

좋은 어른이 되고싶다.


그 아저씨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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