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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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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Jun 25. 2021

좋은 어른(1)

나와 아기(2)

지난 주 금요일, 아기와 단 둘이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KTX를 타야 했다. 사정이 있어 도와줄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여행을 마친 뒤 그 많은 짐을 유모차와 아이와 함께 매고 지고 혼자(아니지, 돌쟁이 아기와 함께)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야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넓게 가보겠다고 특실을 끊었고 유모차를 끌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그냥 가려고 하는데 웬일인지 아쉬웠고 막냇동생의 성심당 ‘튀소구마’가 너무 맛있다는 말이 생각나 혼자 대전역 안에 있는 성심당에 들렀다. 성심당에 가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 갈 수는 없었고 나는 큰 캠퍼백과 아기띠에 10키로 돌쟁이 아기를 매고 튀소구마를 사러갔다.


버둥대는 아기와 함께 아기몸의 두배나 되는 캠퍼백을 든 여자가 무지 이상해보였을텐데 놀라기만 할 뿐, 행여 무슨 일이 날까 타인에 대한 경계심 만랩인 나의 벽을 쉽게 깨지는 못했다. 그놈의 빵이 뭔지, 왜 동생은 튀소구마를 먹고 싶다고 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튀소구마를 보고 좋아할 동생의 모습을 보고싶었고 성심당을 왔는데 그냥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 큰 짐을 매고 이런 저런 빵을 더 샀다.


저번에 먹었던 순크림빵이 눈에 들어왔고 먹물 방망이도 눈에 들어왔다. 크림빵은 맛있으니 두개, 튀소구마도 두개 혼자 가장 합리적인 빵 쇼핑을 끝내고 계산을 하러 기다리는데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아기가 버둥대며 간신히 담은 소중한 빵들도 엎어질 뻔 하고. 누군가 차례를 양보해준다면 정말 빵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겨우겨우 나는 참아냈다.

 

 아이가 태어나고 신기한 것은 내가 강한 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영웅이 고난을 겪고 강화하듯이, 혹은 게임에서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듯...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팔에 유독 힘이 없었고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도 익숙했다. 사회적으로도 나는 약해서 누군가 응당 지켜줘야 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레이디퍼스트’의 대상이었고 그 덕목에 맞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다. 대부분의 일은 곧잘 해내지만 무거운 것을 든다거나 힘을 쓰는 일에는 많은 경우 남자들의 손길이 항상 함께했던 것 같다. 그걸 은근히 잘 이용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아이를 낳고나서부터 나는 이러한 도움이 이제 내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누군가가 지켜주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약한 ‘여자’가 아니라 ‘엄마’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식을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않고 해내고 마는 강한 존재다. 그래서 출산과 동시에 나는 이전의 연약하고 여리여리한 여자를 벗어나 강인한 엄마가 되어야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많은 일상에서 무거운 것을 번쩍번쩍 들고 아이를 매고 어떤 일도 척척 똑똑하게 해내야하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시선 역시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게 느껴져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고 서글프기도 했다.


출산으로 인해 한 순간에 나는 여자에서 엄마가 되고야 말았구나. 슬펐긴 했지만 이내 적응을 했다. 그 적응이 끝났다는 증거가 바로 ‘아이 매고 혼자서 성심당 빵 사기’였던 것이다. 그 무거운 아기와 큰 짐을 혼자 의연히 들고 있는 내게 ‘저 엄마 엄청 힘세네’, ‘애 안고 대단하다 대단해.’하는 시선이 쏟아졌고 나는 그래서 더 의연한 척 할수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왔고 빵을 계산한 뒤 나는 자랑스레 아이와 다시 유모차로 갔다.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드디어 기차를 타러 기다렸다.


아기와 유모차와 아기보다 더 큰 캠퍼백. 이 모두를 혼자 이고 지고...


이렇게 아기를 매고 큰가방 매고 유모차를 접어야하는, 강한 엄마


 

 그 때였을까, 어떤 중년의 노신사 한 분이 계속 우리 아이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안 그래도 경계심 만렙인 내가 혼자 아이를 안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니, 이 아이를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니 더 까칠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무나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그 분에게 ‘뭐야 이상한 사람 아니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강하게 날리고 그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기차를 기다리는데 오가다가 그 노신사가 우리곁을 한 번 더 지나갔다. 신기하게도 밖을 나서면 언제나 다른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관찰하는 우리 아이가 노신사를 아주 빤~히 쳐다봤다.

몇살이예요?”

노신사가 물었다.


“네? 돌 됐어요. 12개월이요.”

“아 그렇구나, 나도 이런 손주가 있어요.”

이 말을 듣는데 경계심을 잔뜩 가지고 위축되어있던 내 마음의 빗장이 한순간에 풀려버렸다.


“근데 지금은 다 외국에 있어서 내가 보질 못하네. 딱 이만할 때 보고 못봤네.”


우리 아이로 인해 노신사가 떠올린 그 추억이 얼마나 갚진 것일지 문득 깨닫고 나는 그가 이상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거두었다.


그리고나서 아주 짧았지만 대화를 했다. 어디로 가는지, 이 곳은 왜 왔는지 등등. 혼자서 비정상적으로 큰 가방과 아이를 챙기는 내가 신기했는지, 아니면 안쓰러웠는지 노신사는 이런저런 대화를 해주었다. 그러더니 기차 도착시간이 될 때쯤 자연스레 내 짐을 들어주려고 하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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