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신앙, 불안 속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의 이야기
엄마, 아빠와 싸웠다. 엄마가 교회에서 권사가 되기로 해서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려면 최소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천만 원까지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배신감과 분노, 억울함 등 여러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비록 짧다면 짧은 26년의 삶이지만, 나는 26년 동안 집안의 돈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돈 때문에 제한된 삶을 살았고, 부모는 돈 문제로 내 앞에서 자주 싸웠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돈이 없다”, “우리 집은 앞으로 큰일이다”, “빚이 너무 많다”라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우리 집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니 6학년 때는 어린 마음에 잠들지 못하고 밤마다 고민에 휩싸였다. 매주 제출하는 일기장에 “우리 집이 힘들어서 걱정된다”는 내용을 반복해서 썼다. 선생님은 그 일기를 보고 교육청의 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봐 주었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은 큰일 났다”,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객관적으로 봐도 친구들 집에 비해 나는 작고 싼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우리 집은 돈이 많지 않구나’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하며 살았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고, 내 방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대학생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국가에서 인정한 가난한사람이었고, 소득분위 1~3분위로 전액 등록금 지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왜 우리 집은 해외여행을 못 가느냐”, “왜 좋은 차를 못 타느냐” 같은 터무니없는 불만을 말한 적은 없다. 나 스스로 봐도 그런 말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21살, 군 입대를 앞두고 할아버지를 모시게 되면서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여유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엄마와 아빠의 걱정은 거실을 넘어 벽을 타고 내 방까지 그대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26살이다. 여전히 엄마와 아빠는 돈이 없다고, 빚이 있어서 걱정이라고 내게 말한다. 그 걱정은 항상 내가 떠맡았다. 이제 돈을 벌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종종(장난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장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돈을 모아 집안 빚을 갚고, 아빠의 새 차를 사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노후 대비까지 내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나는 어릴 적 잦은 부부싸움과 금전적인 문제를 직접 목격했고, 실제로 겪어왔다. 그래서 나는 돈의 결핍을 깊이 경험한 사람이다. 그 결과,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치관은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이 되었고, 돈은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엄마에게 “부자가 되는 것은 나쁜 것”, “돈을 많이 모아도 의미가 없다”, “돈을 좇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예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인생의 최우선 가치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부자가 되는 것이 왜 나쁜지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가난하게 예수님의 자녀로 사느니, 차라리 부르주아의 표본이자 거대한 부호, 그리고 짠돌이 삭개오가 되고 싶다.
각설하고,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말했다.
“정신 좀 차려라. 돈 없다고 매순간 나한테 징징대고 걱정을 떠넘겨 놓고, 이제 와서 그 큰돈을 교회에 바치겠다는 게 말이 되냐. 돈이 너무 아깝다.”
그러자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우선 빚부터 갚으라고 했다.
“그 돈을 교회에 바칠 거면, 나는 두 분 다 돈이 있다고 생각하겠다. 그리고 앞으로 엄마에게 매달 용돈도 주지 않겠다.”
그러자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언제 너한테 매일 돈, 빚 이야기를 했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아빠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말하고, 엄마가 그걸 다 나한테 옮겨서 걱정을 떠넘기잖아.”
아빠는 “권사 직분을 위한 돈은 네 돈도 아닌데, 네가 용돈을 주냐 마냐가 무슨 상관이냐. 신경 꺼라”라고 말했다.
나는 “그럼 좋다. 앞으로 나한테 돈이나 빚 때문에 평생 찡찡대지 마라. 나는 이제 하나도 안 들어주겠다.”라고 말했고
엄마는 축하를 받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 이런 말을 들으려고 꺼낸 게 아니라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앞으로 돈이나 빚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시발. 26년 동안 나를 그렇게 미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안 하겠다고? 퍽이나.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비서’인 제미나이와 챗GPT에게 이 모든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둘 다 공통적으로 말한 것은, 내 부모님의 행동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부모화(parentification)’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아이로 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불안을 쏟아붓는 상담가이자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일기에 집안이 망할 걱정을 썼다는 것은, 이미 그 나이부터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 과부하 상태였다는 설명도 들었다.
나는 내가 선천적으로 약한 사람인지, 다른 가정들도 이렇게 사는 건지 물어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겪는 ADHD,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이 선천적인 결함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의 비정상적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생존 반응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내일 당장 집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면, 뇌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하고(강박), 작은 신호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불안). 부모화라는 개념의 정의와 예시를 보니, 내 인생의 미궁 속 난제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차 안에서 이동하는 동안 엄마와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뒷좌석에서 형과 내가 오들오들 떨며 누가 맞는 말인지 가려내려 하고, 싸움을 멈추려 애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경험들 역시 정서적 학대의 일종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돌봄이 필요하고 아이 같은 여자, 챙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끌려왔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제미나이에게 부모화와 연애 패턴의 연관성을 더 자세히 알아보게 했는데, 부모화란 부모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아이가 부모의 정서적·도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모의 역할을 대신 맡게 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내가 재판장처럼 부모의 갈등을 중재하고 경제적 불안을 대신 짊어진 것은 전형적인 정서적 부모화의 증거였다. 내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심리학자 피터 워커의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의 감정을 살피며 자란 아이들은 ‘조응(fawning)’이라는 방어기제를 발달시키고,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돌봐야만 안전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챙김이 필요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 상황에서만 내 존재 가치를 느끼도록 뇌 회로가 형성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를 챙겨줘야 마음이 편한 강박의 근거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엘리스 밀러의 『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에서는, 부모의 욕구에 맞추느라 자신의 욕구를 억압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자신이 받지 못한 돌봄을 타인, 특히 연인에게 쏟아붓고 대리 만족을 얻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챙김이 필요한 사람에게 쏟아온 정성은, 사실 “누구라도 제발 나를 이렇게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내면의 절규가 투사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의 『몸은 기억한다』에 따르면, 지속적인 가정 내 갈등에 노출된 아이의 뇌는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어 늘 비상 상태가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ADHD나 강박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미지의 숙원이 해결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왜 항상 불안하고, 강박적이며, ADHD와 우울 증상을 겪고, 연애 관계에서 연인이 나에게 의존하는 구조에 중독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가정사를 말하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을 듣는다. 맞는 말이다. 백 번 들어도 백 번 옳다.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매년 책도 20권 정도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벌며, 자기관리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 현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가 과거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분노가 치밀고,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부모가 원망스럽고 미워진다. 때로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오늘부로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 자신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돈을 최대한 많이 모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에 더 신경 쓸 것이다.
내 연애 패턴을 이해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부모와 경제적·정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앞으로 1년간 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