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믿었으나, 그저 나 혼자만의 연극이었다
2019년의 여름, 헬로우톡
그해 여름, 나의 스무 살은 낯선 언어로 시작되었다.
2019년 대학교 노어노문학과 1학년 1학기 시절, 언어 교환 앱 ‘헬로우톡’에서 만난 러시아 여자, 빅토리아(비카)-가명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97년생 상트페테르부르크 모 대학교 광산학 전공생. 이름과 전공, 도시까지도 또렷이 기억하는 건 아마 그때의 내가 얼마나 그녀에게 빠져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는 시공간을 넘어선 대화를 매일 낮과 밤을 새면서 나누었고, 대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그녀는 서울 K대 한국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고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인천공항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낯선 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스무 살의 나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컸고, 그녀의 손을 잡고 서울 곳곳을 누비는 상상을 했다. 드디어 만난 우리는 함께 K대 기숙사로 향했고, 경희궁과 한옥마을을 거닐었다.
여의도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 때, 나는 이미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었음을 깨달았다. 통금 시간 전 그녀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막차를 놓쳐 PC방에서 밤을 새우는 것도 그저 낭만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역사의 의자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는 짧은 순간들이 쌓여 썸인지 썸 아닌지 모를 모호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짧지만 강렬했던 사흘의 시간. 우리는 부산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부산으로 돌아온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일상을 보냈다. 집에서 홀로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는 평범한 시간들도 그녀로 인해 특별해졌다. 곧 그녀가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 나스쨔와 함께 부산에 도착했다. 나는 둘이서만 보내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었다.
부산의 밤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여전히 손을 잡고, 손깍지를 끼고 다녔다. 나스쨔의 시선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이 다정한 분위기가 영원했으면 했다.
마지막 밤은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그녀와 나는 술에 취해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다가 우리는 그녀가 묵는 호텔에 도착했다. 헤어지려는데, 그녀는 갑자기 나를 와락 안았다. 나스쨔가 먼저 호텔로 들어가며 우리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빗소리 속에서 그녀는 "네가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속삭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볼에,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빗소리와 우리의 심장 소리만이 들리는 듯했다.
다음 날 부산역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마지막 포옹과 키스를 나누며 뜨겁게 작별했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꼭 데이트하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나에게 곧 사랑의 맹세와 같았다. 나는 우리가 이제 연인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돈을 모아야 했다. 용돈을 받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노가다를 시작했다.
땀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비행기 티켓값을 벌었다. 100만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그녀에게 가기 위한 나의 열정이었다. 2학기에는 국가근로장학금을 받으며 돈을 꾸준히 모았다. 그녀와의 연락이 뜸해졌지만, 바쁠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오직 그녀를 만날 생각에 러시아어 공부에 매달렸다.
2020년 1월 7일, 나는 카자흐스탄을 경유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홀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긴장보다 설렘이 더 컸다.
공항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기쁨에 겨워 그녀를 힘껏 안았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을 때, 그녀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그 순간 낯선 한기가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집주인에게 그녀는 나의 '여자친구(девушка)'가 아닌 그냥 '친구(подруга)'라고 소개했다. 심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나는 그녀에게 우리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온 의미를 잃었다. 그녀와 두어 번 함께 거닐었지만, 이미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호텔 방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13시간 넘게 잠만 잤다. 홀로 나선 거리에서 인종차별까지 겪자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지루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낸 후, 출국 날이 되었다. 그녀는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배웅해주고, 버스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 도착하면 연락해."
나는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고,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우리의 연락은 끝이 났다. 나의 스무 살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나 혼자 주인공인 줄 알고 착각했던 스무 살의 서툰 연극이었다.
상대는 그저 좋은 친구로서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나는 그 친절을 사랑이라 믿고 내 모든 걸(심지어 땀 흘려 번 100만 원까지) 걸면 상대도 똑같이 응답할 거라 믿었다. 분위기에 취해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던, 지독하게 순진했고 그래서 더 부끄러운 나의 '풋사랑'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바람보다 더 시렸던 건, 그것이 나 혼자만의 뜨거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뼈아픈 쪽팔림을 치르며, 어른의 연애를 향해 비틀거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