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근원을 담담히 되짚어보는 기록
처음에는 내가 부족한 줄 알았다. 며느리로서 뭔가를 놓쳤거나,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줄 알았다. 시댁의 불만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였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내가 조금 더 빨리 눈치챘더라면, 상황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고치려고 했다. 행동을 점검하고, 미리 예상 질문을 떠올리며 다음 만남을 준비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왜 이런 말을 들었을까, 내가 어떤 부분에서 기대에 못 미쳤을까. 그 과정은 자연스러웠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결혼이란 원래 이런 식으로 서로 맞춰가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지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을 고쳐도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고, 한 번의 실수는 곧 성격이 되었으며,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었다. 잘못했다고 인정한 일은 다시 꺼내졌고, 이미 사과한 일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증거로 쌓여갔다. 설명을 하면 변명이라 했고, 침묵하면 뻔뻔하다고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과는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그렇게 모자란 사람일까. 이렇게까지 반복해서 지적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나의 기준이 너무 느슨한 건지, 아니면 상대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건지조차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이 관계 안에서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괜찮은 며느리의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나의 결혼은 누군가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는 일이었다. 나는 며느리이기 전에 검증 대상이었고, 평가의 대상이었으며, 감정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었다.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수록 나는 점점 더 흐릿해졌다. 반대로, 남편은 나를 만나고부터 변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고, 나는 그 변화를 만들어낸 원인으로 비난받았다. 우리는 함께 있었지만,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되고 있었다.
이 글은 특별히 불행한 시댁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다. 이름과 상황만 다를 뿐, 많은 며느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다. 내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관계는 나아지지 않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감정적인 답변이 아니라, 구조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기록이다. 오랫동안 나의 부족함으로만 여겨졌던 고통이 사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반복되는 패턴과 역할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였음을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더 잘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기록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 세계에는 애초에 충족될 수 없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준을 향해 계속 움직이는 한 누구도 평온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이 글은 나르시시스트 시월드라는 구조 안에서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잃어갔고, 또 어떻게 다시 나를 회수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남기까지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