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
이 모든 상황을 가장 단단하게 묶고 있던 단어는 도리였다. 그 말은 언제나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로서, 가족으로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명분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의심하기보다 늘 나 자신을 먼저 점검했다.
이 집안에서 나에게 불편함을 말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편함을 말하는 순간 그것 자체가 새로운 죄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언제나 의도와 다르게 편집되어 돌아왔고,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남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태도가 다르고,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다른 말을 한다는 캐릭터도 설정되었다. 나는 어느새 설명이 필요 없는 문제 투성이 인간이 되어 있었다.
용기를 내어 말한 적도 있었다. 잘 해보려 애쓰는데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는다고.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니가 나한테 상처야.” 그 한 마디로 대화는 종료되었고, 이후의 모든 감정은 또다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이 가족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정 많고, 뒤끝이 없는, 하나를 주면 열을 내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믿음. 성격이 불같은 것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FM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이 예의와 도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믿음. 그러면서도 상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애교를 부리며 살갑게 다가가면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오히려 더 챙겨주는 쿨한 사람들이라는 그 믿음. 이런 수식어들은 이 집안에서 마치 신화처럼 반복되었다. 그 믿음이 단단할수록 책임은 늘 상대방의 것이 되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는 기꺼이 과거를 잊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다. 과거의 일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뒤끝 있고 미성숙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요구된 태도는 늘 같았다. 더 잘하려 애쓸 것, 먼저 다가갈 것, 애교를 부릴 것, 서운해도 넘길 것, 지난 일은 덮을 것.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는 그들의 확신. 그것은 거의 미신에 가까웠다. 시아버지는 내게 며느리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말도 있는데 친정에서 그런 것도 못 배웠냐며 꾸짖었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그들이 내게 했던 말들을 남편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으며 내가 가족을 이간질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렇게 도리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반성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편리한 장치가 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점점 말을 잃어갔다. 침묵이 미덕이 되었고, 감정은 관리해야 할 결함이 되었다. 말을 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발목을 잡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이 없다고 혼나는 편이 나았다.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남편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 덫 안에 오래 머물렀다. 그러나 그 선택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남편을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계속해서 이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날들이 까마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그들의 삶 속에 내가 기꺼이 들어가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하는 계약이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남편이 늘 내 편이 되어주고 있었지만, 남편이 나를 위해 애를 쓸수록 시댁은 "그런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내로서 도리"라며 나를 조종하려 했다. 숨을 조여오는 시댁의 가스라이팅에 하루하루 무기력해졌다. 태어난 지 세 달도 안 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출근한 텅 빈 집에서 나는 매일 베란다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도리라는 단어에 갇혀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들마다 울고 있었다. 결혼 준비를 하던 내 생일날, 웨딩드레스를 입고 피팅룸에 서 있을 때 시어머니는 나의 엄마를 불러 이 결혼을 시킬 수 없다고 통보했고, 엄마의 떨리는 전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드레스를 입은 채 숨도 못 쉬고 울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부모님 앞에 소환되어 무릎을 꿇어야 했고,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출산 인사를 먼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노한 시누이의 비난을 필터 없이 들어야 했다.
아이를 보러 집에 온 직장 동료들이 내 상태를 보고 위험한 상황을 감지했다. 마침 당시 가스라이팅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유명인의 일화 덕분에 동료들이 내가 놓인 상황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둘러 직장으로 복귀했고, 처음으로 이 관계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도리였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규칙이었을까?
나중에야 알았다.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도리라는 것은 관계를 지탱하는 약속이 아니라,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신념에 가까웠다는 것을. 특히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집단 안에서 "우리는 정이 많다"는 말은, 어떤 상처도 문제 삼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방패가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