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남편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이 된 신혼

by 성장노트

각종 행사가 몰아치듯 지나가고, 남편을 똑 닮은 첫 손녀딸에게 시부모님의 관심이 쏠리면서 나를 향한 불만은 잠시 잦아들었다. 그 사이 나는 틈틈이 이 관계의 구조를 공부하며 미약하게나마 상황을 인지하고 고개를 들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태풍의 눈에 머물렀다.


첫째 아이의 돌잔치를 앞두고, 나는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시누이가 절연을 선언했다. 계속해서 분란을 만드는 동생 내외에게 지쳤다는 이유였다. 시부모님은 화가 난 줄도 몰랐던 시누이를 내가 직접 찾아가 달래고, 온 가족이 웃으며 돌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딸에게 "우린 괜찮다, 그러지 말라" 타이르면 될 일이었지만, 책임은 늘 그랬듯 또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아버님은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 숙제검사를 하셨다. 돌잔치 일주일 전에는 나를 따로 불러내 최후통첩을 하셨고, 돌잔치 전날에는 평소 먼저 연락하지 않던 어머님까지 전화를 걸어 두 시간이 넘도록 내가 지금이라도 시누이를 찾아가 화목한 돌잔치를 완성해야하는 것에 대해 주입하셨다. 온 가족이 참석하지 않은 돌잔치가 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초조해하는 그들을 보며,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가족이 아닌 나에게만 책임을 넘기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 숙제를 더이상 하지 않았다.


돌잔치는 시누이 가족 없이 끝났다. 행사가 끝난 뒤,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렸지만 시어머니는 받지 않으셨다. 이후로도 내 전화는 계속해서 닿지 않았다. 대신 시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제명선고였다.

“정말 실망이다. 너는 이제 아웃이다. 아웃.”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욕적인 선고는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의 전화는 차단한 채, 바로 옆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을 종용하는 시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문제는 내가 더 잘하고, 더 참고, 더 사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들을 더이상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시댁과의 관계를 끊게 되었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19일 오전 08_42_05.png 무너진 남편: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이 된 신혼


완전히 행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복귀한 직장에서도 일이 잘 풀렸고,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이도 잘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생명이 찾아왔다.


조용히 두 번의 명절과 행사를 지나며, 남편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님을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고,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라는 미련이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둘째의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남편은 갑작스러운 통보를 했다. 지금 소식을 알리지 않으면 영영 부모님과 등을 질 것 같아 연락을 드렸고, 첫째 아이만 데리고 가서 뵙고 오겠다는 말이었다. 상의할 틈도 없이 남편은 아이를 안고 집을 나섰다.


그날 새벽, 예정보다 일찍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첫째 아이를 친정에 맡겨달라 부탁한 뒤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둘째의 출산을 계기로 남편은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내가 혼자 출산하는 동안, 남편은 첫째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겼다. 사과도 설명도 없이 감동적인 상봉이 연출되었고, 그들은 어느새 우리가 곤란한 순간에 아이를 돌봐준 고마운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친정으로 데려다달라는 내 요청은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졌고, 남편은 밤 늦게서야 돌아왔다. 그렇게라도 부모님께 손녀를 안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후로 시부모님은 내 삶에 다시 들어왔다.

김치통으로, 작명소 방문으로, 봉투와 손편지로.


시어머니는 남편을 데리고 둘째 아이의 이름을 지으러 작명소에 다녀왔다. 둘째에게는 "예의바르게 자라거라. "라는 문구가 적힌 봉투를 보냈다. 직접 끓인 미역국과 각종 김치들을 한 통씩 계속해서 남편의 손에 들려 보냈다. 얼굴도 모르는 산후관리사에게는 스카프 선물과 함께 무엇을 잘 부탁한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적은 "잘 부탁드린다"라는 손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남편의 손에 도리를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실어나르게 했다. 그것들을 전해나르며 남편은 자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나의 두 번째 출산은 그렇게 누구에게 내미는 것인지 불분명한 시부모님의 손을 잡아야 하는 계기로 변질되었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19일 오전 09_52_06.png 무너진 남편: 나르시시스트의 희생양이 된 신혼


상의도 없이 나의 냉장고를 채워가고 있는 어머님의 김치통들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 침묵을 무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손을 내미는데, 나는 그 손을 잡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남편은 첫째 아이를 데리고 본가를 오가기 시작했고, 돌아올 때마다 나를 향한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 어머님의 음식으로 차려진 밥상 위에서 산후관리사와 남편은 매일같이 어머님의 됨됨이와 음식솜씨에 대한 찬사를 나눴다. 내 집이었지만 내가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불편한 마음에 결국 연락을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메시지도 남겼지만 답은 없었다.

나 역시 나에게 내민 손이 아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시부모님이 붙인 프레임이 씌워지며, 남편은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그들의 생각에 점점 동의해가고 있었다. 유난히 남편을 닮은 첫째 아이를 향한 부모님의 애정어린 공세를 보며, 그들이 정 많고 도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오랜 신화에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힘든 시기까지 겹치며, 남편은 마음 둘 곳이 되어주는 부모님의 품으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철옹성 같던 남편은 그렇게 무너졌고, 나는 그런 그의 곁에서 함께 무너졌다. 이 문제를 우리 둘만의 힘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아이 앞에서 내 욕을 서슴없이 하는 부모님을 본 남편은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대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미 무너져버린 우리의 마음을, 혼자서는 더 이상 들여다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함께 서주길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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