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던 시절
상담실에서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운이 좋다고 했다. 고부갈등으로 이곳을 찾는 부부들 중, 남편의 의지로 함께 온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새삼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쳐있던 마음 한켠에 힘이 다시 솟는 것 같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잘해보려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착해보이고 싶다기보다, 적어도 나만큼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제가 되는 곳에 내가 조금이라도 관여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먼저 나를 돌아봤고, 누군가 불편해하면 내가 해결하려 애썼다. 그렇게 살면 세상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다. 적어도 내가 노력한 만큼은 괜찮아질 거라고.
한 마디로 나에게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었고, 스스로도 떳떳한 삶을 살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늘 당당했고 꼿꼿했다.
그런데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 그 믿음은 오히려 나를 깊이 가두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뭘 놓쳤을까. 어디까지 더 하면 괜찮아질까. 그 질문은 상대를 향하지 않았고, 언제나 나에게로 돌아왔다. 누군가의 분노가 터질 때도, 고함이 쏟아질 때도, 나는 먼저 이해하려 했다. 저 사람도 힘들겠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이해는 나의 역할이 되었고, 참는 것은 나의 능력이 되었다.
참고, 넘기고, 견디는 것이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는 특히 그랬다. 가족이니까, 어른이니까, 아내로서,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도리니까. 그 말들은 늘 나를 한 발짝 더 물러서게 만들었다. 불편함을 말하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믿었고, 상처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성숙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그들에게 나의 침묵은 동의가 되었고, 나의 인내는 괜찮다는 허락이 되었다. 선을 넘는 말에도 묵묵한 얼굴을 하면, 그 선은 다음번에 더 쉽게 넘어졌다. 경계는 조금씩 사라졌고, 나는 스스로를 보호할 울타리를 잃어갔다. 관계가 어긋날수록, 더 잘해야 할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남편을 보호하고 싶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 남편에게 너무 가혹해 보였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남편이 편해질 거라고 믿었다. 내가 아프다는 말이, 남편을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키는 일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오해했다.
상담을 받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던 것은 배려가 아니라 자기 소거였다는 사실을.
정서적으로 나를 지배하려는 남편의 가족들에게 기꺼이 누울 자리가 되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나는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이해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감정을 감당하느라, 내 감정이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도 보지 않았다.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나를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세웠다. 평생의 미덕이라 믿어온 태도들이 나를 위험에 빠뜨린 결정들이었음을 그제야 알게되었다. 상담실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야하는지 연습하라는 가이드를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은 남편에게 누구와 결혼했더라도 결국 이 자리에 오게 됐을거라 했다. 아내의 자리에 A가 와도, B가 와도, C가 와도 어머니의 자리에 같은 사람이 계셨기에 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죄책감이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평생 나의 성격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는 습관, 맞추는 태도, 나를 나중에 두는 선택들. 그것들은 미덕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버티기 위해 몸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기 시작했다. 이 관계에서 내가 무너진 이유는 스스로를 버린 채로 너무 오래 버텼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괜찮은 척을 했고, 너무 자주 나 자신을 설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안전한가.
이 관계는 나를 존중하는가.
나는 지금, 나를 지키고 있는가.
그 질문들은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나를 지우는 방식의 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이 긴 이야기에서 내가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