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를 배웠다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대화는 교감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다. 누가 옳은지, 누가 틀린지, 누가 더 위에 있는지를 가르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의 말은 언제나 시험대에 오른다. 설명은 구차한 변명이 되고, 감정은 예민함의 증거가 되며, 경계는 도전으로 해석된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말해도 공격으로 번역되고, 아무리 정중하게 표현해도 무례가 된다. 그들과의 대화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건네는 칭찬조차 위험한 행동이 된다. 그들에 대한 인정으로 해석되어 복종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들은 더 많은 대가를 기대하기 시작한다.
자기애적 공격 앞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침착함을 가장한 순응이었다. 웃으며 넘기고, 좋게 말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 그것은 우아함이 아니라 먹잇감을 내어주는 행동이다. 그들은 그 틈을 정확히 알아봤고, 다음번 공격의 지점으로 저장해두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른채 오랫동안 그들의 언어에 맞추려 애썼다. 최대한 부드럽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최대한 이해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내가 수습하고 설명해야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제가 미처 몰랐어요.”
“다음부터는 더 신경 쓸게요.”
그 말들은 갈등을 잠시 덮었을 뿐, 결코 끝내지는 못했다.
상담을 통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설명하지 않는 연습이었다. 이해받기 위해 말하지 말 것. 납득시키기 위해 애쓰지 말 것. 처음엔 막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그 설명을 재료 삼아 다시 공격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주 짧은 문장부터 연습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상대의 생각을 내 책임으로 가져오지 않기)
“저는 제가 소중합니다. 저를 존중하지 않는 곳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감정 쓰레기통 역할 거부하기)
“저희가 상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책임을 남편과 분산하기)
이 문장들은 상대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증명하지도 않아도 되는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나를 그 자리에서 빼내는 것.
지금 불편하다, 지금 멈추고 싶다, 지금 이 대화는 안전하지 않다.
표현함으로서 나를 지키기로 했다.
처음 그 문장들을 입 밖으로 꺼낼 때, 온몸이 긴장했다. 무례해 보이지 않을까, 더 큰 화를 부르지 않을까,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지 않을까. 내가 이런 문장들을 구사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편이 나를 진정한 갈등의 원인으로 보지 않을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마침내 내 탓으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지만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그것까지 신경쓸 이유는 없다고 했다. 오해를 받고 모든 일의 원흉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렇게 스스로가 단단해야 나 자신을 지킬 수 있고, 나의 가정을 지켜낼 수 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면, 남편의 가족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는 욕먹기 싫은 마음 정도는 내려놓아도 된다고 했다. 나를 인정해줄 곳은 많고 많은데 굳이 그 낮은 자리에서 인정받기 위해 나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두 딸들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그런 단단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내 안에서 이 언어를 반드시 구사해야겠다는 울림이 오는 지점이었다.
우아함은 부드러움이 아니었다. 우아함은 선을 긋는 태도였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물러서지 않는 것, 상대의 감정을 책임지지 않는 것, 침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연습이 필요했고, 실패도 많았다. 말하고 나서 며칠을 후회하기도 했고, 연습한 대로 되지 않아 복기하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있다. 예전처럼 무너지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에 나의 하루가 망가지지 않았고,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 나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단호한 언어는 상대를 바꾸지 않았지만, 내 하루의 질서를 회복시켜주었다.
모든 관계에서 통하는 완벽한 문장은 없다. 하지만 나를 지키는 문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문장은 화려하지도, 설득력 있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문장을 쓰는 사람들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을 말한 뒤에도 내가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언어를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위험에 빠뜨린 그들 덕분에, 나는 소중한 나를 되찾았다.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유산을 얻었다.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