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고함과 절규가 멈추는 조건

훈육인가, 학대인가

by 성장노트

다사다난했던 신혼의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도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아이 출산을 앞두고 시어머니는 몸보신을 시켜주겠다며 식사 자리를 마련하셨다. 자칭 FM이라던 어머님답게, 겉보기에는 배려처럼 보이는 자리였다.


식사는 평화롭게 시작됐다. TV에서 흘러나온 정치 뉴스로 가볍게 스몰토크를 나누던 중, 대화는 어느 순간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의 견해 차이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감정이 격해진 어머님은 갑자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남편을 맞히지는 않았지만, 분명 남편을 향해 날아갔다. 숟가락이 테이블에 부딪히며 난 소리에 식당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고, 웅성거림이 번졌다.


순간의 행동에 스스로도 놀라셨는지, 어머님은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세대인 우리 부부가 부모 세대인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와 예의, 도리에 대한 평가를 고함처럼 쏟아냈다. 점점 더 큰 소리로, 식당 안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마치 방금의 행동이 자식을 바로잡기 위한 부모로서의 훈육이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ChatGPT Image 2026년 2월 2일 오전 10_27_38.png 기이한 고함과 절규가 멈추는 조건

남편의 가족과 친척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봉투를 준비해야 했다. 두둑한 봉투이거나, 양손 가득 든 선물이어야 했다. 상대가 감탄할 만큼의 나눔이어야만 했다. 결혼 전에는 특별히 왕래가 없던 관계들까지, 결혼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몫이 되었다. 어머님은 자녀들의 결혼식을 위해 평생 품앗이를 하며 살아오셨다고 했다. 이제 자식이 결혼했으니, 그 의무를 아들 내외가 이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은 말했다. 만날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관계가 어떻게 가족이냐고. 부모님은 부모님의 관계를 챙기시고, 우리는 우리가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관계에 집중하겠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더 이상 논리로 맞설 수 없게 되자, 화살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너.”

그 말로 시작된 비난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과거의 일들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폐렴으로 입원한 시조카를 병문안 갔던 일이 있다. 치료제가 없고 전파력이 강하다며 미디어에서 확산된 공포감으로 임산부는 재택근무를 하던 때였다. 병문안은 어렵겠다며 선을 그어준 남편의 행동에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시아버지가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혹시라도 시조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 일로 인해 형제 사이가 틀어질 수 있으니,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며느리인 내가 남편을 잘 설득해 병문안을 가게 하라고.


나는 남편을 설득해 복숭아를 사 들고 병원에 갔다. 그 아이가 우리 집에서 맛있게 먹던 복숭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병실에서 과일을 씻고 깎는 것이 어려울지 몰라 몇 개는 깎아서 챙겨갔다. 남편은 나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워했었지만, 그 선택조차 나의 죄목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병원비 봉투가 아닌 복숭아를 챙겨간 일, 우연히 참석하게 된 시부모님의 친정 식구들 모임에 봉투를 준비하지 않은 일, 맞벌이 부부이면서 외벌이인 시누이 가정의 경조사를 넉넉히 챙기지 않은 일, 시조카의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은 일 등등.


말의 뼈대는 늘 같았다. 왜 "나"에게 더 하지 않느냐는 원망이었다.
그러나 그 원망은 계속해서 “둘이 벌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른답게 굴지 않는다” 같은 말들로 포장되어 쏟아졌다.



비난은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결혼까지 했으면 어른답게 행동해야지.”
“그게 예의고, 도리야.”

어머님은 그렇게 소리치며 식당을 뛰쳐나가셨다. 시아버지는 따라가서 붙잡으라며 나를 꾸짖었다. 밖으로 뛰어나가 어머님을 모시고 집까지 모셔다 드리자, 현관 앞에서 출산 후 몸조리하라며 사두셨다는 과일 박스를 나와 남편에게 떠안기듯 건네며 문을 닫으셨다. 그 과일 박스들은 마치 "너희와 달리 나는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꼭 너 같은 새끼 낳아서 똑같이 당해봐.”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하루가 끝났다. 배가 단단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오늘의 폭풍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안도감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일 오전 10_31_40.png 기이한 고함과 절규가 멈추는 조건

나는 처음부터 이 방식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른이 자식을 가르치는 모습이라고 하기엔, 가르침보다 감정이 앞섰고, 설명보다 고함이 컸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고치면 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분노가 트리거 될 때마다 과거의 일들이 끌려 나왔고, 이미 사과한 일들이 다시 현재의 죄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이상했던 건, 그 절규가 멈추는 순간이었다. 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제야 고함은 멎었다. 마치 그 순간이 ‘알아들었다’는 신호인 것처럼.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굴복의 문제라는 것을.



어머님은 이 과정을 훈육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방식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꺾는 과정에 가까웠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내가 얼마나 작아졌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다시 고함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나를 감추기 시작했다. 말수를 줄였고, 표정을 관리했다. 그럼에도 그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만 두게 되면, 나를 위해 애써준 남편이 가족에게서 더이상 설 자리를 잃을 것만 같았다. 어른 세 명이 한목소리로, 나와 결혼한 이후 남편과 가족의 관계가 힘들어졌다고 말하니 정말 그런 줄로만 알게 되었고, 일종의 책임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혼란을 수습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게 함께 수습해보자고 손을 내밀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단순한 책임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감정을 처리하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서, 이미 관계는 균형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몸과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느낌에 이름을 붙일 용기가 없었다.


가스라이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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