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외된 우리
어느 순간부터 갈등의 초점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이냐는 평가였다. 사과했던 일들은 곧 성격이 되었고, 설명했던 상황들은 변명이 되었다. 나는 특정 행동을 잘못한 며느리가 아니라, 늘 부족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이 프레임이 굳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나의 말할 자격이었다. 직접 설명하려 하면 말대꾸가 되었고, 해명하려 하면 변명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대화는 나를 제외한 채 이루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책임이 하나씩 나에게 넘어왔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 그 의무에 대해 누구도 나에게 나의 의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일정이 있는지, 어떤 기준이 있는지, 어디까지가 내 역할인지 알려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결혼한 순간, 나는 이미 그 일을 맡은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앞으로 명절은 네가 알아서 해라” “이제 며느리도 봤는데 내가 언제까지 하겠니” 같은 말조차 하지 않았다. 직접 말하면 부당해 보일 수 있는 요구들은 늘 공기처럼 깔려있었다.
의논하려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메시지도 읽지 않았다. 겨우 연락이 닿으면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아이, 뭘 그런 걸 물어봐. 그냥 너희 좋을 대로 해.” 그렇게 나는 상의했다는 마일리지만 적립한 채, 모든 결정을 혼자 떠안았다. 챙긴 경조사는 센스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문제 되었고, 몰라서 못 챙긴 경조사는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 되었다. 시댁에는 매달 경조사가 있었고, 그만큼 나의 죄목도 매달 늘어났다.
남편은 점점 나에게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남편과 가족 사이를 이간질한 원흉이 되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시아버지는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남편에게도, 친정에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말씀하셨다. “엄마랑 누나가 만나서 네 욕만 해.” “네가 전화를 하면 일부러 안 받는다.”
그렇게 아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고, 밖으로 새면 체면이 손상될 말들은 모두 나에게로 쏟아져왔다. 그리고는 늘 같은 조언이 뒤따랐다. 찾아가서 애교를 부려라, 데이트하자고 말해라,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하나를 주면 오히려 열을 내어줄 거라고. 마치 내가 그 공식을 몰라서 실패한 사람인 것처럼.
그때의 나는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남편과는 행복한 신혼을 그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도 많았고, 삶에 대한 에너지도 넘쳤다. 곧 소중한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는 나의 모든 역할과 가치는 오직 하나로 환원되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유지하는 사람.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
처음에는 믿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내 자신을 믿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이 프레임도 벗겨질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 조심했고, 더 말을 아꼈고, 더 많은 것을 삼켰다. 묵묵히.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투명해졌다. 설명하지 않는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대신 오해가 채워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럴수록 남편은 나를 지키기 위해 가족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그럴수록 나는 아들을 변하게 만든 악인이 되었다. 악순환은 점점 속도를 냈다.
돌이켜보면 이 단계에서 이미 관계의 방향은 결정되어 있었다. 이 방향에 온전히 나 자신을 바치지 않은 죄로 아들이 변했고, 그 변화의 원인은 아내였다는 서사가 완성되었고,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되었다. 나는 직접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남편은 그 자리에서 나의 몫까지 설명하며 홀로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싸움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결국 우리 둘을 모두 지치게 만들었다.
그 관계 안에서 나도, 남편도, 안전하게 설 자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