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사죄 공식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우리 부부를 친정 부모님이 공항으로 마중 나와주셨다. 잠시 친정에 들러 여독을 풀고 신혼집으로 데려다주시기로 하여,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먹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기가 울렸다. 우리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댁이 아닌 처가부터 갔다는 사실에 시어머니는 이성을 잃었다. 수화기 너머로 터져 나오는 고함과 절규는 난생 처음 듣는 데시벨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미리 말씀 드렸었고, 이바지음식도 손님 맞이를 위해 결혼식 당일 받기를 원하셔서 미리 전해드린 터였다.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된 건지 어리둥절했다. 시아버지는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당장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부터 드리라고 하셨다. 당황스러웠지만 소통에 착오가 있었나보다 남편을 달래며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시댁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사죄는 공식이 되었다. 명절, 생신, 어버이날 등등 시어머니와의 만남 뒤에는 반드시 사죄가 뒤따랐다.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시댁에서 나는 언제나 잘잘못을 떠나 아랫사람이었고,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먼저 사죄해야 했다. 그때의 나는 이 상황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못했다. 며느리 역할이 처음이라, 집집마다 문화가 다르니, 내가 몰랐던 규칙이 있나 보다 여겼다. 그래서 불편한 말이 오가도 그 자체를 갈등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수정해야 할 피드백쯤으로 받아들였다.
불만은 늘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연락이 조금 늦었다는 말, 기대했던 선물과 달랐다는 서운함, “다른 집 며느리들은 이렇게 하더라”는 비교. 나는 그 말들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 어머님께는 이게 중요하구나. 이런 건 미처 몰랐네. 그렇게 다음에는 더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대화가 조율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화에는 분명한 공식이 있었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든, 끝은 늘 같은 자리였다. 설명은 필요 없었고, 사실관계나 맥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오해는 오해를 하게 만든 내 잘못이 되었고, 아들에게 서운한 감정 역시 내조를 잘 못한 내 책임이 되었다. 결국 요구되는 것은 하나였다. 며느리의 인정과 사과.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낮은 자세로, 얼마나 충분히 사과하느냐가 그날의 평온을 결정했다. 시아버지는 이것을 '사죄'라고 불렀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하면 또 오해를 살지, 어떤 행동이 문제로 번질지. 다음 만남을 앞두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여러 갈래의 시나리오가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이나 관계의 방향이 아니었다. 문제없이 지나가는 것. 그리고 문제없이 지나가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낮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과들은 결코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록으로 남았다. 한 번 인정한 잘못은 다음 공격의 근거가 되었고, 이미 사과한 일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증명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그날의 사과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저장되고, 누적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졌다. 나는 계속 고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세계에서 나는 점점 더 고쳐야 할 사람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 루프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 역시 같은 공식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부모의 감정을 달래야 하는 아들이자, 아내를 보호해야 하는 남편으로서 그는 늘 중간에 서 있었다. 갈등이 생길수록 그는 더 애를 썼고, 더 중재하려 했으며, 더 많이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설명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말은 어머님을 자극했고, 부족했다는 설명은 더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결국 남편의 노력은 해결이 아니라 책임만 키웠다. 착한 아들이 변했다는 말, 네가 들어온 뒤로 온 집안이 망가졌다는 말 속에서 나는 모든 문제의 원흉이 되었고, 우리는 점점 고립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관계를 구조로 보지 못했다. 여전히 믿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 거라고. 다음에는 정말로 이해가 닿을 거라고.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조금만 더 어른스럽게 굴면 이 공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같은 시험장에 다시 들어갔고, 같은 문제를 또 풀고 있었다. 정답이 없는 시험이라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