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규정을 세우는 법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5년이라는 단절의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끝에 우리 부부는 부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은 처음에는 우리 부부만으로 진행되었지만 이 상황의 중심인 시어머니도 상담실에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상담사님의 전략에 따라 남편이 시어머니께 "우리 부부의 문제에 도움을 주십사" 상담실로 와주실 것을 부탁드렸고, 어디에서든 늘 센터가 되기를 바라는 시어머니는 나에 대한 증언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상담에 응하셨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상담의 초점이 본인의 성격적 경향성과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을 아시고 나서, 상담은 멈췄다. 시어머니는 더이상의 진행을 거부하고 다시 왕래를 끊으셨다.
#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현실에 직면하다
시어머니가 상담을 거부한 후, 우리 부부는 상담사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진단을 들었다. 시어머니에게는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는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성격 구조가 있었다.
"워낙 호두껍질처럼 단단한 분이셔서 어머니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본인의 생각이 곧 진실인 1급수의 세계에 계시지만, 본인 스스로 그 세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 진단은 나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다. 문제는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머님이 바뀌지 않는 성격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담사님은 우리 부부에게 단호하게 당부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어머니를 바꾸려 애쓰지 마세요. 이제부터 아내 분은 건강하게 자신의 규정을 정해두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 분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우리 부부와 가정을 희생시키지 말고 건강하게 지켜내도록 합니다."
이것이 우리 부부에게 내려진 최종 처방이자, 나의 제1규정이 되었다.
# 나의 제1규정: 내가 챙길 사람과 챙기지 않을 사람
나의 규정은 명확해졌다. 나는 더 이상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감정과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 내가 챙길 사람 (나의 웰컴 존): 나의 심신 건강, 남편의 행복, 그리고 두 딸의 평온. 이들이 나의 최우선 순위이다.
* 내가 챙기지 않을 사람 (나의 통제 밖 영역): 나를 존중하지 않거나, 우리 부부의 규정을 침해하려는 모든 외부의 개입.
5년이라는 단절의 시간이 흐른 뒤 찾아온 어느 가을, 시아버님의 연락을 계기로 남편이 다시 부모님을 뵙기 시작했다. 남편은 멈춰버린 관계를 다시 돌리기 위해 나의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나는 남편의 평온과 행복을 위해 그의 곁에 서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의 나처럼 무방비하게 그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도움은 나를 갉아먹으며 남편의 효도를 대신해 주는 희생이 더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만의 새로운 규정을 시댁이라는 외교 관계에 적용하는 과정을 시작하려 한다.
아무 생명체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1급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 이 작은 성을 지켜내는 것. 나는 이제 며느리라는 이름의 누울 자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우리 가정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방어막을 구축하는 작업에 임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며, 동시에 남편의 손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