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손주가 가져온 찰나의 평화

태풍의 눈

by 성장노트

첫 아이를 출산한 후, 나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온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안정을 찾자, 덩달아 시아버님의 컴플레인도 잦아들었다. 남편을 꼭 닮은 첫째 아이가 태어나며 일어난 기적 같은 변화였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시어머니는 매일 안부 전화를 거셨다. 어머님께도 이런 다정한 면이 있으셨구나 하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이 훈풍을 타고 관계가 회복되길 간절히 바랐기에, 보고 싶은 친정 부모님과의 연락도 뒤로 미룬 채 시댁과의 소통에 몰두했다.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 아이와의 면회 시간조차 시부모님과의 영상 통화로 채웠다. 남편은 "이게 손주의 힘인가 보다"라며 기뻐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첫 손녀를 예뻐하는 시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태풍의 눈 같은 짧은 휴식을 누렸다.


하지만 그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천덕꾸러기였던 우리 부부가 '번듯한 아들 내외'로 인정받으려던 찰나, 시누이가 등장했다. 내가 조리원에 입소한 다음 날, 시누이는 가족 단톡방에 자신의 아들 사진을 한 장 툭 던지더니 아무 예고 없이 방을 나갔다.


첫 외손주로서 독차지하던 관심이 우리 아이에게 쏠린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래도 외손주보다는 쫑새끼지"라는 시아버님의 고리타분한 발언이 트리거가 된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시누이는 그날 이후 우리 부부의 메신저를 차단했다.




#육아휴직 = 죄 없는 죄인의 시간

시누이의 돌발 행동은 또다시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어 돌아왔다. 시누이가 주장하는 나의 죄명은 황당했다. 출산 직후 "언니 덕분에 아이를 잘 낳았습니다"라고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는 것.


출산 후 과다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맸던 사정을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참작해준 것을 '은혜'라고 표현했다. 조리원에 입소해 아이 사진은 보냈으면서, 모유 수유 교육을 받으러 가느라 시누이에게 따로 감사 인사를 올리지 않았기에 나는 용서받을 기회를 발로 차버린 무례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에게는 늘 특명이 떨어졌다. 온 가족을 다시 똘똘 뭉치게 하기 위해 시누이의 화를 풀어내라는 것. 시부모님의 논리는 간결했다.


"네가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수십번이고 걸어야 하고, 그래도 안 받으면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해야 한다"


결국 일주일 만에 전화를 받은 시누이가 종이에 적어둔 나의 10가지 죄명을 쏟아내는 것을 다 듣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삶은 더 가혹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시댁 식구만을 위한 백일잔치, 시어머니 환갑잔치 등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고 음식을 차려내며 나는 점점 죄 없는 죄인이 되어갔다.


죄목은 늘어만 갔다. 육아휴직 중이면서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살갑게 앵기지(?) 않는 죄, 심지어는 이름 있는 날(기념일)만 챙기고, 이름 없는 날은 안 챙기는 죄까지 추가되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시어머니의 입맛에 맞는 대사와 행동을 미리 계산하며 나는 서서히 가스라이팅 되어가고 있었다.




#돌잔치: 마침내 선고받은 "제로(Zero)"

아이가 낮잠에 들면 머릿속에 알람이 울렸다. '지금쯤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 하는 시간이구나.' 내 시간이 사라진 것이 억울했지만, 걸지 않아 오는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전화를 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 뒤엔 무거운 부담감이 엄습했다. 이틀 안에 다시 전화를 걸어 전화 마일리지를 채우지 않으면, 오늘의 노력은 소멸되고 내일은 더 큰 질책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드리며 노력했지만,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시부모님 댁 이사 날짜가 바뀌었는데 바뀐 줄도 몰랐던 이사 당일에 가서 일을 돕지 않은 죄로 시어머니를 화나게 했고, 그 여파로 시누이가 화가 났다는 것. 그리고 그 죄로 첫째 아이 돌잔치에 오지 않겠다는 시누이를 설득하지 못한 나는, 마침내 며느리 자리에서 제명 당했다.


돌잔치 2주 전부터 시어머니는 숙제 검사를 하듯 시누이의 참석 여부를 압박하셨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 숙제를 풀지 못했다. 시누이 가족이 참석하지 않은 채 돌잔치는 끝이 났고, 그날 이후 시어머니는 나의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돌잔치가 끝난 날 저녁, 시아버님이 전화를 걸어 선고하셨다.

"정말 실망이다. 너는 이제 제로(Zero)다."




내가 며느리로서 시부모님께 아웃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모욕적인 선고는 나에게 크게 상처가 되지 않았다. 며느리의 번호는 차단한 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하라며 아이처럼 불만을 토로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개안했다.


"아, 이 문제는 내가 오답 노트를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구나."


상식 밖의 세계에 발을 들인 대가는 혹독했지만, 덕분에 나는 비로소 그 세계를 탈출할 결심을 굳혔다. 나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규정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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