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답 노트에 갇힌 신혼

나만의 규정이 절실했던 이유

by 성장노트

모두가 지치고 질려버린 끝에야 결혼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시어머니의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철학관 상담료, 결혼식과 관련된 각종 위약금 등 예단비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이 지긋지긋한 무한 루프는 결혼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승-전-사죄의 공식

신혼여행 귀국 당일,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우리 부부를 아빠가 공항으로 픽업 와주셨다. 친정에 잠시 들러 여독을 풀고 신혼집으로 데려다주시겠다는 부모님의 배려로 엄마가 차려주신 따끈한 김치찌개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시댁부터 들를 것이라 여기고 상의도 없이 우리를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잘 도착해서 처갓집에 와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이성을 잃으셨다. 남편에게 수화기 너머로 외치는 시어머니의 분노와 절규는 난생처음 듣는 데시벨이었다.


결국 시아버님의 지시로 우리는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캐리어를 끌고 시어머니 앞에 달려가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으로, 시어머니와의 모든 만남 뒤에는 시아버님의 지시에 따른 사죄의 루프가 공식처럼 정착되었다.




#누울자리가 되어버린 3년

회사에서 나는 간단한 미팅에도 예상 시나리오별 각본과 대사까지 맞춰보고 임하는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내 예상에 없었다. 시어머니가 즐겨 쓰시는 표현들, 즉, "예로부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라" "예의와 도리" "친정에서 배워왔어야 하는 것" 등에 따르면, 늘 나는 상식과 예의를 배워오지 못한 모자란 여성이었다.


결혼이 처음이고 며느리 역할도 처음이라 내가 놓쳤던 걸까? 나의 부모님도 못지않게 반듯하신 분들인데 계속 부모님을 욕보이게 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오답노트를 복기하는 수험생처럼 다음번 이벤트에는 같은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몰두하는데 남편과의 행복한 신혼 생활을 다 보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시어머니의 분노를 받아내는 누울 자리가 되어드리고 있었다.




#낙인: 악인, 제로 며느리

시어머니의 고함은 기이했다. 훈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지만 내가 보기엔 절규에 가까웠다. 남편은 나를 지키려 그런 시어머니의 고함에 맞서곤 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갈등이 커지니, 만남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다고도 했다. 그럴수록 시어머니의 고함은 커졌다. 그때마다 시아버님은 자리를 피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대낮부터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산불이 한바탕 지나가고 검은 재만 남은 밤이 되면 시어머니가 등을 떠밀어 문밖으로 쫓겨나듯 밀려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시는 보지 말자." 쿵.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시어머니에게 반듯하던 아들을 변하게 한 악인이라 낙인찍혔다. 집안에 잘못 들어온 사람이 되었다. 시누이에게는 반대하던 결혼을 애써 마음을 내어 허락해준 엄마에게 잘못만 저지르는 은혜도 모르는 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앞뒤 다른 애, 온 가족을 이간질 시키는 나쁜년이 되어버렸다. 시아버지에게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기분을 맞추지 못하는 빵점짜리 며느리 (아버님 표현에 따르면 '제로', '아웃')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결혼한 지 3년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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