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통의 시작을 담담히 되짚어보는 기록

통제와 부정의 서막

by 성장노트

돌이켜보면 우리의 결혼 과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시어머니께서는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셨는데, 그 과정과 이유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 처음의 환대와 예상치 못한 반전

처음 시어머니께서 나를 대하신 방식은 과하리만큼 적극적이었다. 남편과 두 번째 데이트를 하던 날, 남편 손에 백화점 화과자 세트와 꽃다발을 들려보내시며 우리 부모님께 어버이날 선물로 전해드리라고 하셨다.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존재감이었지만, 나를 환대해주시는 마음이라 여겨 나쁘지 않았다.


이후 내가 회사 업무를 병행하며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도, 남편 손에 꽃다발을 사들려 보내시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원래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스타일이었지만, 이따금씩 나를 챙기는 남편의 행동에 시어머니의 디렉팅이 얹혀질 때가 있었다. 이미 나를 당신 아들의 여자로 인정해주시는 것처럼 느껴기지도 했지만, "너를 향한 내 아들의 따뜻한 마음은 내 덕분"이라는 어필을 하시는 듯 보이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어필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렇게 꾸준히 이어져왔다.


문제는 1년 정도 만남을 지속하던 중, 남편과 내가 필리핀 세부로 휴가를 다녀온 후 발생했다. 보수적인 가정환경 탓에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남편의 어린 시절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우리만의 달콤한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시어머니의 디렉팅 소식은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갈 무렵, 남편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예전에 우리가 세부에 여행 다녀온 것을 알게 되셨는데, 그런 (부모님이 관리를 안 하는) 집안과 결혼시킬 수 없다며 만남을 반대하고 계셨어요."




# 그런 집안의 딸

여행은 그 집안의 아들인 남편과 우리 집안의 딸인 내가 함께 다녀온, 두 성인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집안의 딸이 되어 있었고, 시어머니의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 우리의 인생 계획, 우리가 평생을 약속한 모든 것이 통째로 부정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하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고, 나에 대한 마음이 크지 않을 수도 있거나 어쩌면 마마보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결혼에 대한 결단을 내려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을 때, 긴장한 남편과는 달리 나는 오히려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그저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 여겼고, 나를 직접 보시고 대화를 나누어보시면 시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그런 집안"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나의 확신은 맞아떨어졌다. 내가 준비한 장소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며, 센스있게 준비한 선물(시부모님께 어울릴 만한 커플 머플러)까지 선물로 드리자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시어머니께서 나를 꼭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우리 집에서 보자."남편은 뛸 듯이 기뻐했다.




# 어머님의 결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무한 루프

식사 초대를 받아 시댁을 처음 방문한 날, 나는 시어머니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6인용 교자상에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차려둔 음식 가짓수. 아끼는 식기라며 식탁 전체를 채운 포트메리온 접시들. 같은 음식을 두 접시씩 놓기도 하고, 김치조차도 메인 디쉬처럼 반 포기를 크게 올리며 상을 가득 채우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 나를 초대한 다음날 몸살로 앓아누우셨을 정도로 준비해야 최선을 다한 것이라 여기는 가치관.


나는 그때 그것은 어머님의 영역으로만 두었어야 했었다.


결혼 준비가 시작된 후, 우리는 "어머님의 결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무한 루프에 빠졌다.

남편과 상의 후 예약한 예식장 날짜를 철학관에서 받은 좋은 날이 아니라는 이유로 변경 요구.

상견례 후 나의 부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결혼 허락 번복.

혼주 한복, 예복. 예물, 예단 문제는 당연히 사안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시어머니가 다녀온 점집에서 나와 결혼을 시키면 안 된다고 했다는 이유로 결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회사원이었던 나와 남편은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한 달 중 절반을 연차를 쓰고 서울 유명 철학관을 모두 뒤졌다. 좋은 궁합이라는 풀이를 아무리 들려드려도 나와 남편이 손잡고 다정하게 가는데 안 좋은 말을 하겠느냐며 가짜 철학관이라고 했다. 남편 혼자, 혹은 아버님을 모시고 다녀와도 소용없었다. 시어머니 본인이 다녀온 곳만 진짜 철학관이라고 했다. 결국 내가 시어머니가 다녀왔다는 그 철학관을 직접 찾아가 우리 둘은 궁합이 좋고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받아냈다.


시어머니는 본인이 그 사기꾼 철학관의 피해자였으며, 부모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모두의 인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고집을 꺾으셨다. 그 과정에서 남편 시댁의 가장 큰 어른이신 남편의 큰어머니까지 나서서 설득을 해주셨다. 그렇게 어렵게 다시 결혼을 승낙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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