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의 심리와 자기 회복에 대하여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8)

by 이화윤 lee hwayoon


사랑할 수 있을 때 뜨겁게 사랑하라. 한번 꺼진 사랑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상처 입은 사람은 안다. 깊은 사랑은 아픈 경험과 견딤을 거쳐 빚어진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자기가 꿈꾸었던 사랑과 실제 사이의 거리를. 그래서 쓴다. 사랑하고, 아파하고, 또 사랑하라.



1. 시간의 동굴 속에 잠든 것들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해 본 사람은 안다. 실연의 상처가 어떤 모양으로 몸속에 남는지.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 가장 깊은 곳, 시간의 동굴 안쪽에 접혀 있다가, 가장 고독한 순간이 오면 가는 피가 흐르듯 한 방울씩 맺힌다. 눈가에 눈물이 사르르 배어 나오는 날이 있다.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여도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을 끝내 삼키는 순간이 어찌 없겠는가.


사랑은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터져 나오는 생명의 뜨거움이다.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내 안의 가장 좋은 것들로 겹겹이 덮어 그 열기를 다스리다 보면, 양피지 편지처럼 자기 안쪽이 먼저 그을린다.


사랑의 상처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결정結晶이 되어 남는다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사무치는지는, 그 과정을 견뎌본 사람만이 안다. 상처의 짙은 천막 속에서 홀로 앓는 뜨거운 열과 어지러움. 사랑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한 번이라도 온 힘을 다해 해본 사람은 안다.


2.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잃는 것이 무엇인가. 상대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상대가 사라지면 나도 함께 사라진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자기를 완성해 가는 쌍방향의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다. 나의 전부였던 사람이 이제 곁에 없다는 사실이. 귓가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남아 있고, 돌아서면 그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착시 현상이 한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 비어 있음이 낯설다. 낯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리까지 함께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가장 아프다. 한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만 존재하던 나를 함께 잃어버렸다는 감각. 그의 이름 안에서만 불리던 내가 있다. 그의 눈에만 비치던 나의 얼굴이 있다. 그것들까지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실연한 사람은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한다. 거기 비친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지 한동안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서면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간다. 사람들은 웃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걷고, 지나는 상점에서는 달큼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게 더 아프다. 자기 혼자만 벽 안에 갇힌 것 같다. 소리는 들리는데 닿지 않는다. 손을 뻗어도 잡히는 것이 없다. 세상이 자기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자리에서 자책을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떠난 것일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이 물음은 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를 어떻게든 복구하려는 내적 외침이다.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믿어야,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는 희망이 남는다. 원인을 자기 안에 두는 편이, 아무 원인도 알 수 없는 채로 버려지는 것보다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자책은 사실을 규명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나 자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는 희망은, 그 사람이 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설령 돌아온다 해도, 이전의 신뢰는 이미 깊이 금이 간 뒤다. 한편으로는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막상 돌아왔을 때 그 사이에 쌓인 상처가 분노가 되어 가까스로 남은 관계마저 다시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별은 버려진 것이 아니다. 사랑이 끝나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 가운데 '네가 부족해서'라는 말은 가장 마지막까지 삼가야 할 비난이다. 그저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이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음이 약한 사람은 지금, 끝난 사랑의 무게를 전부 혼자 짊어지려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 무게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이고, 떠난 사람은 이미 자기 몫을 내려놓고 갔다. 남은 사람만 두 사람 분량의 짐을 들고 서 있다. 그 짐을 내려놓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3. 바닥까지 내어준 사람의 아름다움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가장 안쪽 서랍을 연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유년의 상처, 새벽에만 꺼내 보던 외로움, 누구 앞에서도 내려놓지 못했던 자존심까지. 그 모든 것을 꺼내어 보여주었는데 상대가 뒤돌아섰을 때, 가슴에 먼저 내려앉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내가 너무 많이 믿었구나. 그래서 떠난 것이구나.


그러나 떠난 사람의 등 뒤에는 그 사람대로의 무게가 실려 있다.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는 단 하나의 이유만 놓이는 법이 없다.


어떤 이에게는 가까워지는 일 자체가 생존의 문제다. 한 사람이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리면 자기가 통째로 삼켜질 것 같아, 숨이 막히기 전에 먼저 문을 닫고 돌아선다. 어떤 이는 두 사람의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먼저 주저앉는다.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지고 걸어갈 용기가 없어서, 감당할 힘이 약해서다.


어떤 이는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몰라서 떠난다. 이미 가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보석 같은 사람이 익숙하게 느껴지고, 그 친숙함을 평범함으로 잘못 읽는다. 그래서 더 반짝여 보이는 다른 길을 좇아 떠난다. 먼 훗날 그 빛이 한때의 착시였음을 깨닫고 오래도록 뒤척일지라도, 그 사람의 발걸음은 이미 멀리 지평선 밖으로 떠난 뒤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바닥이 드러나도록 쏟아부을 수 있었던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세상의 대부분은 상처받을까 두려워 자기의 절반도 채 건네지 못한다. 나머지는 깊이 숨겨두고, 회피할 길을 미리 열어둔 채로 사랑한다. 퇴로를 남기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 세상은 잘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은 이미 아름다운 사랑을 한 사람이다.


흔들릴 때마다 붙잡으려 했고, 아플 때마다 참으려 했고,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던 시간. 그 시간은 나약함이 아니다. 사랑 앞에서 끝내 피하지 않은 사람만이 치러낼 수 있는 값이었다.




4. 상처 위에 피워낼 것들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간은 망각의 먼지로 상처의 흔적을 덮을 뿐, 없던 일로 되돌려 주지 않는다. 다만 아픔이 서서히 밀려나며 결을 바꾼다. 날카롭던 것이 둥글어지고, 찢어지던 자리가 보이지 않는 흉터로 내려앉는다.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가 다음 사랑을 쉽게 열지 않는 경험이 된다.


사랑의 아픔은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한동안 일어서기 힘들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는 그토록 아플 수 없다. 아팠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뜻이다. 사랑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에게만 열리는 통과의 문이다.


깊이 아팠다는 것은 깊이 사랑할 줄 안다는 뜻이고,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한층 더 단단한 사랑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을 견디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아픔을 딛고 걸어 나온 사람은 더 깊이 보는 눈을 갖게 되고, 더 단단한 손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 처음 사랑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상대의 침묵 속에 담긴 말, 웃음 뒤에 숨겨진 외로움, 맞잡은 손의 힘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순간.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 보고, 그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 서 본 사람에게만 새겨지는 깊이다.


또 하나의 것이 생긴다. 이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을 안다. 아침에 혼자 차를 끓이고, 혼자 걸어 나간 길 위에서도 자기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힘이 생긴다. 그 힘이 다음 사랑에서 자기를 상실하지 않도록 지켜 준다. 자기를 잃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매달리지 않고, 흔들지 않고, 상대의 세계를 부수지 않으면서.


그리고 이제 더 신중해진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아무에게나 기대지 않는다. 빈자리를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자리에 들어올 참된 사랑을 알아본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경고의 신호가 읽히고, 전에는 놓쳤던 따뜻함이 보인다. 같은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기 삶의 중심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관계 속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보는 눈이 열린다.


그러니까 아픔을 걸어 나온 사람 앞에는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전과 다른 눈으로 사람을 보고, 전과 다른 자리에서 사람과 만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의 사랑은 빛나기는 하나 얕다. 한 번 깊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사람의 사랑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흔들림이 적고, 오래간다.


지금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상처의 한가운데서는 자기 앞의 밤만이 전부로 보인다. 그러나 이 어둠에도 계절이 있다. 어느 날 아침, 이유 없이 창밖 햇살에 눈이 부신 날이 온다. 그날부터 당신은 조금씩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다시 책을 펼치게 되고, 다시 음식의 맛이 돌아오고, 다시 누군가의 웃음에 마음이 조금 열린다. 그 모든 작은 되돌아옴이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러니 지금은 아파도 된다. 울어도 된다. 무너져도 된다. 사랑 앞에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서 있던 그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영영 일어나지 않는 일만은 하지 않기를. 당신에게는 아직 피워내야 할 사랑이 남아 있고, 그 사랑은 이 겨울을 지나야만 싹을 틔울 수 있다. 추운 계절이 지난 뒤, 상처 위에는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꽃이 필 것이다.


그 꽃 앞에서, 당신은 어떤 얼굴로 다음 사랑을 맞이할 것인가.





이별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다. 사랑의 과정 중 한 현상이다. 어떤 사랑은 함께 걸어가는 방식으로 완성되고, 어떤 사랑은 끝내 헤어지는 방식으로 끝난다. 어떤 경우든 그 사람을 아낀 당신의 마음을 헛되이 만들지 않는다. 지금 아픈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탓하는 일에서 잠시 비껴 서 보는 것이다. 이 시련의 계절을 통과하여,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내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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