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7)
우리가 사랑 앞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사랑을 잘못 선택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관계를 해치는 것은 그 마음이 너무 커서가 아니다. 그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처음부터 조금 어긋나 있어서다. 상대를 향해야 할 마음이 자꾸만 자기 안의 불안을 먼저 들여다보는 쪽으로 바뀐다. 좋아하는 마음이 관계를 망치는 것은 대개 그때부터다.
처음에는 기다림조차 즐겁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람. 계속 그 사람이 생각난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나 표정에도 다정함을 느낀다. 그저 서로의 옷자락만 스쳐도 기분이 좋다. 함께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영화 속 장면처럼 아름답다. 모든 세계에 의미가 부여된다. 매 순간이 우리의 사랑을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필름 이미지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한 시간이 지난다. 어느덧 헤어지는 순간은 슬픔이 찾아온다. 다시 만날 때까지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해야 할까.
그를 떠올리기만해도 입술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설레고 기쁘다.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밤새 긴 통화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메신저 답장이 오면 행복하고, 조금 늦어도 기다리는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서 그것대로 좋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왜 이제 만났나 싶다. 그를 놓칠까 봐 마음이 흔들린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다. 기다림이 설레는 이유는, 그 시간 동안 마음이 오롯이 상대에게 가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자주 보게 된다. 요즘 예뻐진다는 말을 듣는다.
사랑하면 누구나 이런 변화들을 겪는다. 그러나 이때부터가 진짜 관계가 지속되느냐, 헤어지느냐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게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
그러다 서로 사귀기로 약속하면 이전과는 다른 관계로 발전한다. 이제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꺼다. 상대가 소유의 개념으로 살짝 바뀐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속하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마음 먹는 순간 집착이 강해진다.
설레던 것이 점검이 된다. 왜 아직 답이 없지. 왜 아까는 바로 읽더니 지금은 반응이 없지. 왜 어제는 먼저 연락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늦는걸까. 이 생각은 상대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게 궁금하다. 나를 지금 사랑할까. 마음이 식었을까. 계속 사랑할까. 변할까. 사랑은 언젠가는 식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다 이런 불안이 일어난다.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니, 머리가 아프고 먹먹해진다.
그리고 이 기다림은 곧 확인으로 이어진다. 나 좋아해? 얼마나 좋아해? 내가 제일 소중해? 관계가 안정된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이 말들은 장난처럼 오갈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가 불안 위에 서 있을 때 이 물음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상대에게 건네는 물음이 아니라, 자기 불안에게 건네는 질문이 된다.
사랑은 원래 살아 있는 감정이다. 조금 흔들리고, 약간씩 달라지고, 때로는 말보다 침묵으로 더 깊이 흐르기도 한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은 그 살아 있는 것을 그대로 두지 못한다. 어제와 오늘이 같다는 증거를 원하고, 분명한 상대의 대답을 원하고, 처음과 같은 진심의 표현을 원한다. 그래서 사랑을 느끼기보다 사랑을 점검하게 된다. 감정 대신 확인을 요구하게 된다. 확인은 잠깐 안심을 줄 뿐이다. 한 번의 대답은 곧 다음 확인을 부르고, 다음 확인은 더 큰 확실성을 요구한다.
불안한 사람은 계속 사랑의 증표를 요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계속 반응해야 한다. 관계에서 다정함보다 피로가 먼저 쌓인다. 이렇듯 균열의 시작은 대개 미움보다 어느 한편으로 치우신 관계에서 먼저 시작된다. 그리고 그 확인을 요구한 사람도, 그것에 응답한 사람도, 결국 둘 다 지친다.
상대를 잃지 않으려고 자기를 억압할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삼킨다. 싫은데 괜찮다고 말한다. 불편한데 웃으며 넘긴다.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는데 조금만 더 맞춰보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다정해 보이고, 때로는 성숙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사랑이니까 조금 접어도 된다고.
그러나 배려에서 오는 침묵과 두려움에서 오는 침묵은 구별되어야 한다.
배려는 상대를 향한 능동적 선택이다. 내가 괜찮아서, 지금 이 순간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말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반면 두려움에서 오는 침묵은 다르다. 이 말을 했다가 멀어질까 봐, 싫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깨질까 봐, 진짜 내 모습을 보였다가 실망할까 봐. 조용히 참는다. 그 선택의 중심에 상대가 없고 나의 불안이 있다. 이런 침묵은 배려라기보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한쪽은 주도하고 다른 쪽은 따르기는 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다. 성숙한 사랑이 자기 자신의 온전함을 유지한 채 이루어지는 관계라면, 이것은 자기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랑은 이런 방식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운함과 억울함의 형태로 침전되어 있다가, 어느 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표면 위에 올라온다. 그래서 관계에서 계속 한쪽만 손해보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너무 오래 한쪽이 굽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를 지우는 사람에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지워진 사람이 언젠가는 그 자리를 되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좋은 모습만을 보고, 나쁜 쪽은 지나친다
마음에 드는 연인과 사귀게 되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라는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야. 서로를 이상화한다. 만남의 순간들은 달콤하고, 즐거운 이벤트이다. 가장 좋은 장소, 멋진 장소, 아름다운 핫플레이스. 최적의 구도로 예술 작품 같은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소셜플랫폼에 공유한다.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너무 행복해요. 커플로서 최고예요. 이것을 표현하고, 그대로 믿는다. 커플로서 가장 이상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실제가 아닌 연출하는 우리. 보여지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나타낸다.
동시에 상대의 좋은 모습만을 사랑이라는 앨범에 담고, 나머지는 지나치거나 버린다. 그것은 극히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일뿐이라고 간과한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위에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투사한다. 상대의 실제 모습이 아닌, 내가 필요로 하는 이미지를 상대 안에서 찾아내고 그것과 관계를 맺는 방식. 상대의 이상화는 내가 사랑하는 기준으로 상대를 덮어씌우는 것이다.
실망은 상대의 변심으로부터만 오지 않는다. 내가 이미 가진 기준과 현실이 어긋날 때, 상대가 그것에 부딪쳐 올 때 흔히 발생한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실은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사랑의 서사를 완성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과 사랑하고 싶어. 그런데 그런 사람은 실제 만나기 힘들다. 상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덧씌운 이야기가 벗겨진 것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마음이 관계를 망친다는 말은 조금 더 정확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문제는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아니다. 그 마음이 불러낸 오래된 두려움이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갈망, 버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공포, 애매한 채로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 진짜 내 모습을 보였다가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것들은 지금의 상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것들이다.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람은 상대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의 기억, 상처, 경험도 함께 만난다.
자기 존재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의 반응으로 자신을 확인하려 하고, 그 결과 늘 불안하다. 사랑의 기준이 상대의 반응에 있기에 언제나 불안하다. 그 불안이 상대를 향할 때, 사랑은 점점 더 버거워진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완성될 것을 기대하지만, 정작 사랑 안에서 더 불완전해지는 경험을 반복한다. 상대에 대한 기대가 현실에서 좌절될 때 우리는 상대를 원망하거나 자기를 탓하거나, 더 강하게 확인을 요구한다. 그 어느 방향도 관계를 더 깊게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깊어지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이 어떤 순간에 상대를 향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이고,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흔들릴 때 자기 마음을 바로 읽는 힘이다.
초반의 사랑은 언제나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내가 어떤 상실에 취약한 사람인지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드러남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때 사랑은 불안의 해소가 아닌 두 존재의 진짜 만남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