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 비웃어도 좋다. 나는 얼마 전 사이비 종교에 포교당할 뻔했다. 입구까지 발을 담갔다가 간신히 빼내었다.
사건의 발생은 이렇다. 방학에 홍보 게시판을 뒤적이다 여러 가지 차를 시음해보는 행사인 줄 알고 티 블렌딩 이벤트를 신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벤트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을 잡았고 그곳에서 상담사 한 명을 만났다.
이 프로그램은 상담을 진행한 후에 개인에게 맞는 차를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이었고 프로그램을 주관한 업체는 외부 상담사를 고용한 형태였다. 즉, 상담사는 차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고 시음 역시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상담 이후 개인에게 맞춘 커스터마이징 차를 배송해준다고 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니 그 업체의 정체는 뭐였을까 지금도 모르겠다.
어쨌든, 예상과는 달랐지만 먼 거리 온 게 아까워서 상담을 시작하였고 심리 테스트 같기도 하고 MBTI 검사 같기도 해서 이 기회에 나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상담에 임하였다. 이 당시에 지원했던 인턴도 떨어지고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기운이 없던 차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니 솔직히 좋았다.
그래서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과거에 어떨 때 행복했고 어떤 시기에 불행했는지 그리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삶의 궤적을 돌아보았고 가족 이야기까지 하며 나를 오픈하였다. 상담사는 원래 본인의 내면을 찾아가려면 1년 이상 투자해야 하는데 미리보기로 5번을 만나보고 1년을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고, 여태까지 상담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에 도움을 받았던 나는 그러자고 했다.
이후 상담사는 시카고 대학이 학생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며 다양한 고전을 읽게 하였고 그 결과, 삼류 대학에서 일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시카고 대학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에 고전을 활용해보자고 했다.
고전 중에서도 문학과 비문학, 철학, 신학이 있는데 각각의 학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어보며 내가 공부해왔고 많이 읽어본 학문보다 접해보지 않은 신학을 공부할 때 더 큰 시야가 생길 거라며 신학을 내면 탐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권했다.
여기서부터 살짝 의심스러웠지만, 상담사가 신학이라는 학문과 종교는 따로 생각해야 하고 우리는 학문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할 것이며 신학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을 통해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일단은 들어보았다. 신학을 공부하는 도구로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자 인정받은 성경을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었고 서양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대고 선서하는 등 성경이 단순히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사회의 기틀에 놓여있다는 상담사의 말, 많은 과학자들도 신을 믿는다는 말을 듣고 성경을 통해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설득당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고 이 무렵에는 텀을 오래 두고 만나면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일주일에 3번씩 만났다. 그러면서 예전에 상담을 했던 멘티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상담사 본인의 멘토와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그때는 다들 내가 궁금해서 보러 왔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상담사가 프로그램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주변 인물들을 동원한 것이 아닐까 싶다.
5번의 만남이 끝나고 1년 상담을 할지 말지를 정하는 날이 왔고, 나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차피 인턴도 떨어져 방학에 할 일도 없는데 나의 궁극적인 행복을 찾아준다니 일단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굉장히 혹했던 것 같다. 이십몇 년 스스로를 모르고 살았는데 1년을 투자해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엄청난 수확이 아니냐는 말, 스스로를 알아야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된다는 말, 이 말들이 평소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던 나에게 크게 다가왔고, 환경을 바꾸지 않고도 내면을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결국 넘어갔다.
성경 공부 마지막에는 항상 본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점을 물어 단순히 성경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마무리를 했다. 몇 번 더 상담이 이어진 후, 어느 날은, 한국에 청년들에게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추천서를 써줄 테니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는 면접을 봐야했고 보통은 카페에서 만나 상담을 했는데 이날은 면접을 위해 카페 맞은편 건물에 나를 데리고 갔다.
건물의 7층에서 나중에 알고보니 사이비 종교의 전도사들을 만났고 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지 동기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진지하게 변화되고자 할 의지가 있는지 나의 각오를 물었다. 괜히 또 이런 면접이라고 하는 것을 거치게 되면 이 기회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답변을 하면서 같은 맥락으로 스스로를 내면화하게 되는 것 같다.
이 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8개월짜리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 공부였는데 오전 10시 반, 저녁 8시 이렇게 두 타임으로 월수금 일주일에 세 번씩 청년들을 모아놓고 설교처럼 강의를 진행한다. 한 번은 저녁 시간에 한 번은 오전 시간에 참여했는데 저녁 시간에는 프로그램에 온 사람들의 수가 정말 많았다. 절대 크지 않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에 의자를 가득 놓아 약 100명 정도의 청년들이 앉아서 강의인지 설교인지를 듣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무척이나 놀랐다.
끝나고 나서 상담사와 일대일로 맞은편 카페에서 나머지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녀는 슬쩍 이단과 사이비의 이미지와 정의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단과 사이비하면 가정과 일을 내팽개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미지가 있고, 정의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상담사는 개신교 중에서도 종파가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한국에서는 장로회가 주류이고 주류와 다르면 이단, 사이비라고 불린다고 했다. 또 이단이었다가 신도 수가 많아지자 이단이 아니게 된 경우도 있다며 이단과 사이비의 정의는 모호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나는 이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단순히 성경을 전하려는 교육 단체가 아니라 이단 혹은 사이비 단체겠구나 직감했다.
그리고 역시나, 단체에 대한 소개가 예정되어 있는 프로그램 첫 주 금요일에 전도사는 본인들의 단체가 사이비라는 것을 밝혔다. 이들은 사이비라고 지칭되는 것을 숨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핍박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진정한 교리가 때로는 사회의 핍박을 받기도 한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은 전도 활동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나누라는 신의 뜻에 따라 청년들에게 무료로 성경을 전파하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 아무리 세뇌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단체가 밝힌 이름은 너무나도 익숙한 사이비 종교라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도망쳤다. 일주일에 세 번씩 8개월 동안 성경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시간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해당 종교 단체에서 하는 성경 공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스스로도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떳떳해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들어보고 아닌 것 같으면 그때 나가도 된다는 전도사들의 말, 자신들도 불안정했는데 이곳에서 제대로 된 성경 공부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 등 인생에 고민이 많은 청년들이 솔깃해할 만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꾀어낸다.
나도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였다면, 걱정이 없는 시기였다면 코웃음을 치며 한눈에 알아봤겠지만, 자존감이 떨어지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이런 사탕발린 말들을 들으니 현혹되지 않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곳에 나온 순진한 청년들 옆에는 한 명씩 나의 상담사 같은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존재가 있었다. '밀착 마크',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사이비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프로그램은 정말로 성경 말씀만을 전하는 프로그램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안정을 가져다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나는 바다에 폭풍이 불 때도 있는 것처럼 인생이란 항상 안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것이 자연스럽듯 인생 역시 약간의 출렁임은 있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단정적으로 '이걸 하면 다 해결될 거야, 행복해질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계기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결국 사람들은 접근하는 목적이 있고,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본인의 직감을 믿고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