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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불편러로 사는 사람

인권과 동물권과 환경, 그리고 특히 여성 인권.

by 장윤서 Feb 12. 2025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나는 민감한 편인 것 같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민감하다'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민감-하다 敏感하다
[형용사]
1. 자극에 빠르게 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영향을 받는 데가 있다


나는 잠귀가 밝고 큰 소리에 예민하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눈이 침침하고 목이 칼칼하다. 사람들의 기분을 잘 알아차리고 단어 사용이나 어감에서 상대의 의도를 금방 눈치채곤 한다. 그렇지만, 내가 민감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살면서 불편한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익숙하지 않은 것에 색안경을 끼고 볼 때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나라에는 채식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사회적으로도 채식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우리 집단에는 채식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은 연애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가 이성애자라는 것을 가정하고 말한다. 여자에게는 '남자친구'의 존재를 묻고 남자에게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묻는다. '연인'이나 '애인', '파트너'라는 단어는 비교적 잘 쓰이지 않는다. 


계절마다 쏟아지는 신상 디자인과 패션 트렌드에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지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불편하다.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은 어디 갔는지 자원 포화의 시대에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필요한 소비와 자원 낭비를 촉진하는 마케팅과 홍보물의 만연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몇몇 기업의 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동 노동이나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안전한 근로 환경을 보장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회사는 이용하고 싶지 않다. 친일 기업도 마음 같아서는 다 불매하고 싶지만 친일 청산이 되지 않은 한국의 정재계에서 친일하지 않은 재벌 기업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이다. 




여성 차별도 불편함을 느끼는 원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인 한국에서 사는 삶은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여자화장실의 표시는 남자형에 치마를 입힌 형태인 건지, 왜 남자고등학교는 OO고등학교이면서 여자고등학교 OO여자고등학교라고 명칭하는 것인지, 왜 여성의 신체기관을 아기가 머무는 궁궐이라는 뜻의 ‘자궁’이라 부르는 것인지(심지어 ‘아들 자’ 자를 쓴다), 왜 아기는 엄마가 낳는데 아빠 성을 따르는 건지, 왜 육아에 적극적이지 않은 엄마는 나쁜 엄마가 되고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는 슈퍼맨이 되는 것인지 내가 보고 자라온 세상은 이해가 안 가는 것 투성이었다.


OECD국 중 한국은 26년째 부동의 성별 임금 격차 1위이다, 이미지 출처: OECDOECD국 중 한국은 26년째 부동의 성별 임금 격차 1위이다, 이미지 출처: OECD



그렇다면 한국에서만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떠한 사회도 완전한 평등을 이룰 순 없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Man’이라는 단어에 남자라는 뜻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뜻도 있듯이 한국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인간의 기본형은 남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male에 fe가 붙은 female, man에 wo가 붙은 woman처럼 여성은 기본형이 된 적이 없다. 인체에서 차지하는 수분 비율이 얼마인지 아는가? 보통 60-70%라고 한다. 흔히 알려진 이 지식은 역시나 남성의 인체를 기준으로 하는 지식이었다. 여성의 인체 수분 비율은 50% 정도이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성의 인체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의학계나 약학계뿐만 아니라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설계되는 산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은 사고가 나도 안전벨트가 남성의 인체를 기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받는 신체적 피해가 남성보다 더 크다는 연구가 있다. 하물며 자동차도 그런데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팠던 책상과 의자, 까치발을 들어야 닿는 찬장, 한 손으로는 타이핑이 불가능한 휴대폰 등 갑자기 내 눈앞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베이비 피버(Baby Fever)’이라는 덴마크 넷플릭스 시리즈는 주인공인 난임 전문의가 전남자친구가 정자은행에 기증한 정자를 자신에게 수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난임 전문의로 일하는 주인공을 찾아오는 고객 중에서는 싱글맘이 되고자 하는 비혼 여성들과 게이 커플도 있다. 한국에서 비혼 여성이 보조 생식술을 받는 것이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동성 커플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불법으로 전남자친구의 정자를 훔쳐 수정한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임신 중지를 고민한다. 덴마크에서는 비혼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임신 18주 이내에서는 조건 없이 임신 중지의 자유를 가진다.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 불합치 결정하였고 2020년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않아 2021년부터 형법상 낙태죄는 사라졌다.( ‘낙태’라는 단어 자체에 아이를 떨어뜨린다는 부정적인 어감, 여성에게 죄책감을 주는 어감이 있기 때문에 사용을 피하고자 하지만 형법에 ‘낙태’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부득이하게 사용하였다. 언어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어 혼돈의 카오스를 야기한다. 조건 없이 임신 14주 내의 임신 중지 수술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14조 개정안이 논의되었으나 현재까지도 개정되지 않아 부모가 유전적 질환을 가진 경우, 강간 및 준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혈족 간의 임신인 경우, 산모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에만 한정하여 임신 24주 내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2024년 세계 최초로 임신 중지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였다.


참고하면 좋을만한 기사: 장수경,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8988.html  비혼 출산은 여성의 자유와 가족 형태의 다양성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저출생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다른 나라의 보조생식술 정책에 대한 비교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임신 중지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 승안 후 에펠탑에 새겨진 '나의 몸은 나의 선택' 문구. 이미지 출처: 로이터 뉴스임신 중지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 승안 후 에펠탑에 새겨진 '나의 몸은 나의 선택' 문구. 이미지 출처: 로이터 뉴스



민감한 사람이 사는 인생은 쉽지 않다. 피곤하게 살지 말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는 그저 더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바랄 뿐이다. 




참고 자료

정빛나,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40503158900098 

장슬기,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curationView.html?idxno=316535

류재민,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4/03/06/UN2CO7P4QRGJPEOP2U5JEDCO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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