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떨어져서 본 한국어
외국인과 대화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 ‘아임 파인 땡큐 앤 유?’이다. 이 말의 전제는 ‘하우 아 유?(How are you?)’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어로는 ‘기분이 어때요?, 잘 지냈어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왜 영어에서는 만나자마자 통성명도 하기 전에 기분이 어떤지를 물어보는 걸까? 비단 영어뿐만이 아니다. 스페인어도 ‘하이, 하우 아 유’처럼 ‘올라, 께 딸?(Hola, que tal?)’로 대화의 포문을 열고 ‘봉주르 꼬멍 싸 바?(Bonjour, comment ca va?)’ 프랑스어, ‘할로, 뷔 겟츠?(Hallo, wie geht’s?) 독일어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에서 친구들과 언어 교환을 하며 한국어로는 How are you?를 어떻게 말하냐고 했을 때, 처음 깨달았다. 한국어로는 How are you?를 묻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상대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나는 정말로 궁금해졌다.
또 하나, 한국에서는 You’re welcome에 해당하는, 굳이 해석하자면 ‘천만에요, 별말씀을요’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 고맙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냐는 외국 친구들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한국에서는 말 대신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고 답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굉장히 특이한 나라였으리라.
이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 유독 잘 쓰이지 않는 말을 발견했다. 바로 ‘죄송합니다’ (또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이다. 지하철에서 누군가에게 밀침을 당해도, 앞사람에게 발을 밟혀도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는 얼마나 잘났느냐. 사실 그것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쏘리가 그렇게 잘 나오더니 한국에만 오면 미안하다는 그 말이 참 어렵다. 말이 너무 길어서 그런가도 생각해봤다. ‘미.안.합.니.다.’ 5글자, ‘죄.송.합.니.다.’ 5글자, ‘쏘.리.’ 2글자에 비하면 길긴 하지만 정말 단어 길어의 문제일까. 줄여서 ‘죄.송.’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 말을 내뱉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는 몇 글자 말보다는 차라리 목례가 편한 것 같다. 물론, 목례마저도 보기 드물지만.
왜 언제부터 미안하다는 말이 죽은 언어가 되었을까.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보다는 자주 쓰이지만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땡큐’를 남발하는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고맙다는 표현 역시 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언어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는 나라의 기본적인 인사말은 항상 공부해서 써먹으려 한다. 여행자로서의 도리라기보다는 그냥 외국인과 소통하는 게 재밌고 ‘나 이 정도는 할 줄 알아’라고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그래봤자 외국인 관광객 한 명으로 보였겠지만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여러 언어가 뒤섞이고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아주아주 얕게 많은 언어들을 주워 담은 수준도 아니고 정말 스쳐 지나가면서 느낀 바, 유럽의 언어들은 유사성을 지닌 언어가 많다. 스페인어를 배우면 같은 라틴어에 뿌리를 둔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배우기 무척 용이하고 영어와도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스웨덴어와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또한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반면에 한국어는 독립성이 강한 언어이다. 중국어, 일본어와 한자어를 공유하고 문법적으로도 일부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한글이라는 표시 체계도 다르다. 그러니 언어 문화 또한 독특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높임말이다. 영어나 스페인어, 중국어에도 (일본어는 배운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격식체는 있지만 한국어만큼 일상에서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또한 나이보다는 관계에 따라 존댓말을 사용할지 말지가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나이가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호봉제, 연공서열제만 보아도 연륜과 경력을 인정해주는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윗사람, 적은 사람은 아랫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나이에 따라 서열을 나누는 문화에 기반한 것이다. 아랫사람은 '감히' 윗사람의 말을 거역할 수도, 지적할 수도 없다. 그것은 곧 경험이 풍부한 어른에 대한 반기이자 연륜에 대한 무시이니까. 그렇게 윗사람은 자신의 말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아랫사람은 소통의 창구를 닫아 버린다. 수직적인 언어는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고 세대 간 갈등을 초래한다. 높임말이 언어 표현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문화적 자원이자 공경과 예의의 의미를 담은 산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어느 정도 이상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 높임말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사람들이 조합하는 단어 선택에서조차 의도와 의미가 담겨있다. 오늘 내가 사용한 단어와 문장은 어떤 언어였을까. 남들을 무시하는 언어였을까, 상대의 안부를 묻는 언어였을까.
*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되어 더 이상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누고 싶은 생각과 이야기가 아직 많지만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대학교 4학년으로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실행하고자 합니다. 독자님들이 눌러주신 라이킷과 댓글은 큰 응원이 되었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았습니다.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비정기적으로나마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Unsplash의 ibmo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