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꿈틀이

지렁이와 함께 살기

by 코모레비

유난히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몇 주 사이에 체중이 늘어나 있었다. 요즘 기운이 너무 없어서 힘을 내야겠다는 마음에 한약을 먹기 시작한 지 3주가 되어 간다. 한약이 소화 흡수를 도와주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킨 결과인 듯했다. 활력도 생기고 몸이 건강해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뱃살이 늘어나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오늘부터 조심하면 돼.' 하면서도 먹는 대로 살이 되는 타고난 체질이 오늘따라 못마땅해진다.


온라인 마트에서 주문한 먹거리들이 도착했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달달하고 시원한 수박만 한 게 없다며,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배달된 수박을 쟁반에 올려놓고는 야심 차게 반으로 갈랐다. 앗, 이런. 색깔이 심상치 않다. 거기다 껍질까지 두껍다. 불안한 예감이 빗나가길 바랐지만, 겉모양과 맛의 상관관계는 적중했다. 2만 원을 버린 것 같아 스멀스멀 분노가 차오른다. '화채 만들어 먹으면 되지 뭐' 하며 마음을 다독여 보지만, 아쉬운 마음은 감출 길이 없다.


이런 날은 아이들의 행동도 괜히 더 눈에 거슬린다. 방 정리를 하라는 둥, 책은 언제 읽을 거냐는 둥, 엄마의 심란한 감정은 폭풍 잔소리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늘 한결같이 '좋은' 엄마이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추슬러야겠다는 마음에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가는 길에 두 딸에게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가 마음이 좀 복잡하고 답답해서 밝게 대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물론 딸들은 엄마를 이해하고 오히려 격려해 주었다.


"괜찮아. 나도 그럴 때 있어 엄마. 힘내!"

11살 막내에게서 온 답장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감정을 전달하고 나니 조금 편안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안의 묵직함이 완전히 떨쳐진 건 아니었다.

저녁 운동으로 공원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모두 잘하려 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좀 나아졌다 생각했지만 어느새 고개를 내미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나 자신을 못살게 구는 거였다. 글쓰기 모임 과제와 써내야 하는 감상문, 또 내가 읽고 싶은 책과 쓰고 싶은 글. 학교 수업과 아이들 교육 문제 등. 많은 것들 속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글쓰기 과제 기한에 대한 부담감을 말씀드렸고, 기꺼이 일정을 여유 있게 조정해 주셨다.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의지가 때로는 나와 내 가까운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다가는 언젠가 터지는 일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작가 크리스타 K. 토마슨이 쓴 <악마와 함께 춤을>이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렁이'에 비유한다. 지렁이는 지면 바로 아래에 살아서 땅을 조금만 파보면 끈적거리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흙 속을 휘젓고 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렁이를 역겨워한다. 우리는 꽃만 감상하고 정원에 지렁이가 산다는 사실은 잊고 싶어 하지만, 사실 꽃과 마찬가지로 지렁이도 정원의 일부이며 지렁이가 존재한다는 건 정원이 번성하고 있는 것이라 설명한다.

걱정과 두려움, 분노, 시기와 질투 등. 부정적인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나를 찾아온다. 잡초처럼 뽑아서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이것만 없으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감정 또한 나의 일부이며, 그 자체로 삶을 지니고 있기에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책의 저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너그러운 솔직함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감정을 짓밟거나 부풀리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패할 때가 있고 인생이 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내 안에 사는 '지렁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것. 그 모든 것이 내 삶에 좋은 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그들과 앞으로도 잘 지내봐야겠다. 너그럽고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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