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형이상학(Metaphysics). 한 번도 공부해 본 적 없는 이론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처음 책을 정독했을 때,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내가 글을 읽은 것인지, 글씨를 읽은 것인지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형이상학’에 관한 유튜브 강의를 3가지 찾아 듣고, 책을 두 번 정도 다시 훑어보고 나니 그제야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알고 싶은데 이해가 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했다. 그럼에도 앎을 향한 노력을 놓고 싶진 않았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현실태라는 목적을 향해 간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목적에 대한 욕구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정말 그랬다. 내 모든 감각과 지각을 열어 앎이라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지혜에 이르는 과정은 누적적인 앎의 과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이해가 된다.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존재와 존재자에 대한 궁극의 질문을 다루는 학문. 형이상학(Metaphysics)은 물질 너머의 세계를 탐구한다. 철학은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이고, 본질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이란 곧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 이유와 존재 목적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이다.
본질이란 모든 형상들,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자 목적을 의미한다. 결국 철학은 형이상학이고 형이상학은 존재론이다.
내가 무엇인지 알려면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알아야 하며, 자기가 아닌 것을 아는 것은 ‘사유’를 통해 가능하다. 자기와 다른 것, 즉 비동일성과 차이를 통해서 심화가 이루어진다. 다른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자기를 아는 것. 비동일성을 거친 동일성은 이전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사유는 ‘무엇’으로서의 사유를 말하는 것이고, 존재는 ‘이것’으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무엇’으로 나아간다. 누가 떠밀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밀고 가는 것이다. 오직 사유를 통해서만, ‘무엇’은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더 깊고 넓게 보고 싶다는 생각, 통찰력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나를 좌절시키기도 한다. 내 안에 ‘없음’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작아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빛이 비쳐왔다. 그 길은 누가 강요해서도, 떠밀어서도 아닌 ‘나 자신이 밀고 가는 길’임을 가르쳐 주었다. 조금은 힘겹게 뚫고 가는 이 공부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러면 됐다. 지금 내게 그 마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낯설고 어렵다고 해서 가지 못할 길은 아니니까. 나의 속도로, 내 걸음으로 조금씩 올라가면 된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그 본래의 뜻처럼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으로 내 안에 더 깊이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인간의 유한함을 절실하게 깨달으면서도 신적 사유의 무한성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았던 그 옛날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내 안에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