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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Jul 10. 2023

내 글을 쓴다는 건

지난날의 나를 추억하는 창구를 만드는 것

요즘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다.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한 문학가들의 답변을 엮은 책이다. 일흔한 명의 작가들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문학을 하게 된 이유를 풀어낸다.


먹고살기 위해 글을 썼다 고백하는 분도 있고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분도 있었다. 여러 이유들 중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정찬 작가의 문학을 하는 이유였다. 그분에게 문학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이며 도구가 아닌 목적이라고 했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일기를 정성스럽게 적어서 담임선생님께 도장을 3개나 받곤 했다. 도장도 좋았지만 그 옆에 선생님이 남겨주신 짧은 글이 더 좋았다. 나의 하루를 공감해 주시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다이어리를 쓸 때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는 아주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대학생이 돼서도 나는 다이어리를 매일 썼다. 21살 때부터 28살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하루를 기록했다. 그날 기분에 어울리는 스티커를 고르고 또 스티커 색깔과 비슷한 볼펜 색으로 내 기분을 적어 내려갔다. 글을 쓸 때면 공기 속을 부유하던 나의 하루와 그날의 기분들이 글로 차분히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티켓 다이어리를 사서 여행, 영화, 뮤지컬은 따로 기록했다.


그래,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본 뒤 영화표를 꼭 챙겨 나왔다. 영화표를 붙이고 감상 글을 적는 것이 좋았다. 뮤지컬을 보든, 박물관을 가든 표는 꼭 챙겨서 기록했다. 여행 갈 땐 기록에 남기려고 버스표까지 고이 접어서 지갑에 넣어두곤 했다.


그날의 공간과 시간들에 내 감정을 섞어서 기록하는 것이 행복했다. 다이어리의 글들을 보고 있으면 그날의 기억들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선시대에는 글 쓰는 것이 자신의 됨됨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인즉슨 글은 곧 본인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글은 어떤 모습을 담고 있을까? 내 글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뽐내는 글이었던가? 시시콜콜한 잡담 같은 가벼운 이야기였던가?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심해같이 깊고 어두운 우울감에 잠식되어 있을 때 나는 다른 감정으로 억누르고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때뿐, 우울감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나를 더 낮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안 좋은 감정은 피하고 외면해도 계속 찾아오는 걸 깨닫고 난 후, 나는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피하지 않고 우울감을 마주하며 나의 마음을 글로 풀어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내 안의 어두운 면을 들킬까 봐 못다 한 이야기들도 다이어리에는 모두 털어놓았다. 나의 20대에 내 다이어리는 고민 소통창구였고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소중한 보물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왜 글을 쓰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순간의 감정을 담고 간직하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며 느끼는 것들, 거기서 피어오르는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감정을 오롯이 다 받아내준 고마운 다이어리.


나는 글을 쓸 때 내 마음속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사진 찍듯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 과거의 나를 기록하여 내가 나를 추억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사진도 과거의 내 모습을 담고 있지만 글만큼 내 모습을 진실하게 담고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글은 쓰고 나면 과거의 글이 된다. 요즘은 볼펜보단 자판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고 있다. 휴대폰 메모 어플에 그 순간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두고 그 글을 소재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다. 자판을 다 두드리고 저장 버튼을 누르고 보면 그 글은 50초 전의 내가, 1분 전의 내가 쓴 글이 된다.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내 감정과 생각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지난날 나의 기록들을 보며 부끄럽게 느껴질지라도 그 또한 나였으니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 철없던 생각이나 미성숙한 행동들도 그땐 그랬지 하고 과거의 나를 추억하고 싶다. 다른 사람 기억의 파편에 숨어있는 과거의 내가 아닌 내 안에 남겨진 과거의 나와 마주하고 싶다.


지금 이 글도 며칠 뒤에 보면 어떤 감정이 들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는 순간이 주는 희열은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처럼 통통 튀기도 하고 마라맛처럼 얼얼하기도 하다. 그 순간들이 좋아 나는 또 글을 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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