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에르떼 Nov 21. 2023

삼천원의 행복

바람이 서늘해진 어느 가을날, 내 동생이 머리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며 가족톡에 셀카를 보냈다. 단순히 앞머리만 잘랐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나도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앞머리만 잘라도 기분 전환이 된다며 적극 추천했다. 동생의 권유에 난 바로 미용실로 달려갔고 10분 만에 앞머리를 얻었다. 오랜만에 생긴 앞머리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어려진 기분이 들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집 가는 길, 심지어 집에 도착해서도 괜스레 계속 셀카를 찍게 되었다. 요리조리 얼짱 각도를 찾아가며 카메라 버튼을 누르니 셀카가 금방 쌓였다. 오랜만에 열심히 찍어본 셀카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3천 원으로 이렇게 풍족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니 소소하지만 참 예쁜 소비가 아닌가.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작은 변화에 이렇게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앞머리 자르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변화 없이 연속되는 일상은 삶은 계란처럼 퍽퍽할 수밖에 없다. 계란 노른자 같은 삶 속에서 나를 지키고 일상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숨통이 트일만한 나만의 필살기가 필요하다. 목에 걸린 노른자를 시원하게 내려주는 나의 방법이 있다면 정말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출근길 통근버스 안에서 창문 밖의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가을의 완연함에서 난 행복을 찾았다. 새파란 하늘색과 대비되게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들을 보면 자연의 그 색감이 예뻐서, 가을이 한창임을 느껴서 행복하다.


코 끝을 시원하게 맴도는 차가운 바람 앞에서도 아직 감기에 걸리지 않은 나의 면역력에 또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낀다. 두 달째 도라지청을 열심히 먹은 보람이 있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엄마께서 알려주시는 나의 강아지 깜순이 일상을 듣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다. 요즘 말문이 트였는지 쫑알쫑알 끙끙대며 말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절로 입가에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생각난다.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 sns에 자랑하기 바쁘다. 행복을 위해서 큰 금액을 소비하였다고 해도 그 행복은 잠깐이면 지나갈 뿐이다.


투자 금액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적은 금액으로도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설사 소소한 행복을 얻더라도 큰 행복만큼 소중한 것이다. 행복은 크기로 따지지 않고 빈도로 따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여러 번 느끼는 행복이 결국엔 큰 행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3천원을 주고 자른 앞머리로 나는 당분간은 쭉 즐겁고 행복할 예정이다. 새로 생긴 앞머리에 적응하며 기분 좋은 나날들을 이어가야겠다.

이전 08화 밤에 우리 영혼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