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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Oct 15. 2024

순간의 순간

지난여름의 초입, 파주 지혜의 숲을 다녀왔다.

딱 1년 만이었다.

그사이 그녀는 또 변해있었다.


방문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는 그녀.

예전의 감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예전엔 오로지 책과 나뿐이었는데

지금은 음료와 와인, 케이크까지 함께한다.


조용히 책만 보는 분위기

종이책을 사라락 넘기는 소리와

종이의 향만 가득한 조용한 분주함에서


경쾌한 음악소리

사람들의 수다소리

얼음 갈리는 소리로


좀 더 다채로워지고 공간이 풍부해졌다.

그 대신 농도는 옅어졌다.


책으로만 채워졌던 짙은 종이의 농도가

옅어졌다. 다른 존재들이 생겨났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까?

오랜만에 와도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내 마음도 모른 채 그녀는 계속 다른 모습으로 날 마주한다.


변하지 않으면 고이고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니

그녀의 변신 또한 이해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변화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의 시큼함, 그녀와 나만의 농도 짙은 종이의 세상이 그리워지는 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나는 왜 거기서 슬픔을 느낄까.


내가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내가 좋아했던 느낌 그대로

있어주기만 바라는 건데 너무 큰 바람인 걸까?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이 바뀌고

AI는 나날이 발전하며 플랫폼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마구마구 생겨나는 세상이다.


이렇게 바쁘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예전 느낌, 예전 방식을 바란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걸까?


그 흐름에 나도 편승하면 되는데

어쩌면 이미 나도 모르게 그 흐름을 타고 있을 텐데도 씁쓸하고 텁텁한 이 기분은 뭐지.


어쩌면 나는 순간의 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서 그런가 보다.

흘러가는 찰나의 순간을, 그날의 공기와 감성을

나만의 사진으로 영상으로 기억해서

내 마음 안에 전시를 해두나 보다.


시간 날 때 그 전시회에 가서 나 홀로 그때를 추억해서 그 감정들이 더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극대화된 감정들이 더 증폭되어 내게 큰 존재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그 증폭된 감정과 달라진 공간의 간극을 느끼면

거기서 나는 공허함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내 안의 감정증폭장치가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감성을 지니고 있는 내가 좋다.

급하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면서도 지난날의 분위기, 그 느낌을 추억하고 아쉬워하고 슬퍼할 수 있는 내 감성이 좋다.


순간의 순간을 기억하는 감성,

그 순간의 순간을 추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 감성을 그대로 지켜내며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섭리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아쉬움과 슬픔을 담은 향수병에 새로운 변화에 대한 반가움을 한 방울 톡 떨어뜨리고 싶다.

그래서 유연한 향을 지닌 감성도 함께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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