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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Jul 07. 2024

밤에 우리 영혼은

요 근래까지만 해도 로맨스 영화는 내 영화 카테고리 범주 밖에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여자 주인공이 부러웠고 괜히 옆구리가 시린 느낌이 묘하게 슬펐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찾아오는 공허함이 싫어 외면했었는데 최근 연애를 시작하며 사랑이 충만해진 나는 드디어 로맨스 영화를 볼 여력이 생겼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영화는 소설이 원작인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는 영화였다. 각자의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노년의 남녀가 서로의 외로움을 치유해 주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용기 내어 루이스 집 문 앞에선 그녀, 애디의 노크로 시작된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뒤 자신과 함께 잠을 자는 게 어떻겠냐는 그녀의 말에 루이스는 당황한 기색을 표한다. 밤에 찾아오는 외로움이 싫다는 그녀는 밤에 잘 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루이스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덧붙인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루이스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둘은 어색한 동침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그와 그녀는 과거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지고 곧 침대뿐만 아니라 정서도 함께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출처 : 넷플릭스 갤러리


하지만 애디의 아들 문제로 애디는 루이스와 함께 살던 동네를 떠나게 된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루이스에게 자기 가족의 일이니 이해해 달라는 말만 남긴 채 말이다. 그녀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루이스는 그녀에게 휴대폰이 담긴 택배를 보내고 그날 밤 그들은 오랜만에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그들의 밤 통화는 계속되었다.


이 영화를 보니 최근 경제 라디오에서 들었던 AI 인형이 생각났다. 한 지자체에서 독거노인을 위해 업체와 손을 잡고 만든 AI 인형은 그들의 손주가 되었다. 그 로봇 같은 인형들에게 노인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바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께 지겹도록 들었던 밥은 먹었냐는 걱정 어린 말이었다. 밥 먹었냐는 물음은 끼니는 잘 먹고 다니고 있냐는 안부의 인사말이고  그 인사는 결국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말이다.


노령화 사회, 독거노인,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지금 이 영화는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홀로 남은 노년의 남녀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은 어쩌면 사람은 결국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결말로 귀결된다.


사람 인자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불같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적당한 온도의 관심과 애정이면 충분하다.


출처 : 넷플릭스 갤러리


애디의 용기로 시작된 루이스와의 특별한 관계는 젊은이들의 사랑처럼 뜨겁진 않다. 하지만 달궈진 돌솥의 미지근한 온기처럼 따뜻하고 지속적인 관계이다. 루이스와 애디가 서로에게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또 서로의 감정에 공감해 주며 특별한 관계가 되어가는 과정은 참 예뻐 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품고 살지만 노년이 되면 그 외로움은 더 증폭되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감정이 되기도 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안을 느낀다. 독거노인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결책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를 챙기며 돈독해질 것이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가끔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를 보게 된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함께 이겨내고 자식들을 건사하며 수많은 삶의 굴곡을 넘은 두 분. 이제야 편안한 여유를 느끼며 눅눅한 여름밤공기를 함께 마시러 나온 그분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옆의 사람과 함께 과거를 추억하며 밤공기를 함께 마시는 일상, 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다행히 내 곁에도 그런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과 함께 늙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뭉클해지고 또 감사하다. 나와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이 사람, 평소에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낌없이 해주는 이 사람, 그리고 마지막 순간 눈을 감을 때 정말로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는 이 사람.


이 사람이 곁에 있어 나의 노년이 두렵지 않다. 건강을 잘 챙겨 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삶이라는 항해를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싶다. 사람 인자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챙겨주고 챙김 받고 싶다. 루이스와 애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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