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스산했던 거리가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아기 솜털 같은 연둣빛 잎들이 달리고 곧이어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각종 매체와 sns에서는 앞다투어 벚꽃의 개화 시기를 알려주느라 바쁘다.
벚꽃같이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으며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꽃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남몰래 폈다가 무관심 속에 저무는 꽃들도 있다. 보도블록의 작은 틈을 뚫고 자란, 길가에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들이 그러하다.
들꽃들에게도 각자의 이름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들을 뭉뚱그려서 그저 ‘들꽃’이라고 부른다. 엄연한 이름이 있는데 그렇게 불리다니 얼마나 서운할까?
나는 그런 들꽃들에게 눈길이 간다. 산책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올망졸망한 들꽃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옅은 푸른색의 작은 들꽃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소다맛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색깔이다. 꽃잎의 크기는 또 얼마나 작은지. 동화 속의 가장 작은 공주인 엄지공주도 살기 힘들 것 같다. 손톱보다도 작은 꽃잎들이 모여서 꽃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걸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노란색 물감을 짜놓은 듯 또렷한 노란색의 꽃은 색상이 너무 선명해서 눈길이 절로 간다. 날 좀 보고 가라며 열심히 예쁜 자태를 뽐내는 듯하다. 초록색 잎과 노란색 꽃이 대비되어 더 예뻐 보인다.
쨍한 보랏빛 꽃잎을 보면 너무 예뻐서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몇 분이고 계속 보게 된다. 평소에도 보라색 물건들을 좋아하는데 보라색 들꽃이라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작고 소중한 이름 모를 들꽃 친구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게 아니라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오래 머물며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다리는 조금 저리지만 마음속에는 행복이 묻어난다. 귀엽고 앙증맞은 들꽃들을 보면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 없다.
모두가 기다리고 반겨주는 벚꽃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인 등 특정 직업군만 화려한 벚꽃 같은 인생을 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꽃 같은 삶을 산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땅에 뿌리를 내고 때가 되면 알아서 꽃을 피우는 들꽃 같은 삶 말이다.
남들에 비해 특별하거나 비범하지 않아도 뭐 어떤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몫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들꽃처럼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자리에서 평범해서 더 매력적인 들꽃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은 참 대단하고 멋진 존재다.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상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그 사람에게 고유한 이름을 가진 꽃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가족, 지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유일무이한 들꽃으로 서로의 의미가 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되어가는 게 인생 아닐까? 평범한 나날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 서로의 존재를 감사해하며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만 곁에 있다면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화려한 벚꽃이 아니더라도 뭐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유일무이한 들꽃 같은 존재가 되는 게 나는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