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면 괜스레 마음이 저릿해진다. 상주가 되어 있을 지인을 떠올릴 때도 그렇지만 언젠간 나도 그 자리에 있게 될 거란 걸 알기에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주시던 부모님과의 이별은 언제 간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예정된 이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별에도 농도가 있는 것 같다. 속이 다 비칠 만큼 투명한 이별은 비교적 금방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농도가 짙은 이별은 헤어 나오기가 매우 힘들겠지… 상실을 겪는다는 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살면서 이별을 처음 겪어본 적은 언제였던가 생각해 본다. 아마도 열 살 무렵이었던 거 같다. 그 당시 주택가에 살면서 다양한 동물들을 키웠더랬다. 부모님께 애원해서 토끼 한 쌍을 키우기도 했고 강아지와 병아리 등 작고 소중한 생명들과 만남을 가졌지만 이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모두 슬픈 이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픈 이별은 1년 넘게 키웠던 강아지 ’아롱이‘와의 이별이었다. 아롱이를 잃어버린 후 펑펑 울면서 거리에서 아롱이를 목놓아 불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음을 준 존재와 처음 이별을 하고 상실을 겪은 그때의 아픔은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 나이를 더 먹으며 동물 말고도 다양한 것들과 이별을 해보았다. 정든 동네와의 이별, 학생 신분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 이별들은 켜켜이 쌓여 크레이프 케이크가 되었다. 수많은 이별들을 겪고 그 슬픔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케이크… 하지만 더 슬픈 것은 아직 이 케이크가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아직 내 앞에는 내가 겪어내야 할 많은 이별들이 놓여 있다. 그중에서도 농도가 매우 짙은 이별은 내 강아지 깜순이와의 이별, 그리고 부모님과의 이별이겠지...
깜순이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보일 때면 너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간 무지개별을 가게 될 깜순이… 먼 훗날 그날이 오기 전에 더욱더 많이 사랑해 줄 것이다. 다양한 곳에 가서 새로운 냄새를 맡게 해 주고 산책도 더 자주 나가서 깜순이에게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언젠간 깜순이로 인해 많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함께 한 소중한 기억들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원동력이 될 거란 걸 알기에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깜순이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나에게 정서적으로 큰 버팀목이 되시는 두 분을 뵐 때면 그저 좋다. 학창 시절에는 당연히 같은 집에서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생활했는데 이제는 그 소소한 일들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학생 때가 정말 행복하고 좋았구나 깨닫는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곁에 계셨고 걸음마부터 인생을 대하는 태도까지 가르쳐 주신 두 분인데 내가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약해지신다는 게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아주 먼 미래에 나는 두 분과 이별을 맞이하겠지… 그때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 때면 눈앞이 아득해지고 자신이 없어진다. 내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면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혼자 살게 된다면 그 큰 상실의 아픔을, 공허함을 견딜 수 있을까? 무섭고 두렵다. 그러니 지금 현재에 더 충실하려고 한다. 먼 훗날 후회가 섞인 슬픔을 감내하고 싶지 않기에 지금 더 잘해드리고 더 사랑한다 말할 것이다.
문득 주위의 어른들을 둘러본다. 그분들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겪으셨을까. 친구와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부모와의 이별을 겪은 분들의 슬픔의 크레이프 케이크는 얼마나 크고 견고할까. 그 힘든 일들을 다 겪고도 자신의 자리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그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금쪽상담소를 보면 이별과 상실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겪고 난 후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이 부족하여 아픔을 꾹꾹 눌러 담느라 슬픔의 크레이프 케이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슬픈 감정을 오롯이 느낄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이 안쓰럽기도 하다.
이별과 상실로 인한 감정은 뒤로 하고 빠르게 일상에 복귀해야 하는 우리. 상실을 겪은 후 하루쯤은 아니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의 슬픔을 마주하고 울음으로 해소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바탕 시원하게 울고 나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슬픔의 크레이프 케이크도 더 작아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