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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Oct 31. 2022

이상한 사이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몰라

오전 6시 20분. 휴대폰 알림은 어김없이 울린다. 나는 알람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한다. 그래야만 아침을 먹을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 때부터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은 터라 아침을 거르고 회사에 가면 배가 매우 고파 간단하게라도 꼭 챙겨 먹는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분주하다. 반찬 가게에 출근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수다 소리를 시작으로 나의 출근길은 시작된다. 화창한 햇빛은 나뭇잎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비춘다. 여름철의 태양빛은 작렬하게 내리쬐어 피하고만 싶었는데 가을의 햇빛은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카페 라테의 거품처럼 모든 식물과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아침부터 햇살에게 응원받는 느낌이 들어 힘이 난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사이를 힘차게 걸어가며 나는 그날의 기분에 알맞은 음악을 듣는다.


버스를 타면 눈을 감고 잘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창 밖을 내다본다. 창 밖의 풍경은 늘 새롭다. 햇빛과 구름의 양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져 같은 거리지만 새로운 느낌이 든다. 차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게 흥미롭다. 창 밖의 작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기분이다.


거리에는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눈에 익은 분들이 몇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이름하여 시청 아저씨이다. 시청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늘 마주하는 분이다. 그분은 목에 사원증을 걸고 포멀 한 옷을 입은 채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린다. 나는 그 사람의 직업을 생각해 본다. 시청에서 근무를 하시겠지? 민원인 상대하는 게 정말 힘들 텐데 오늘은 별 일 없이 잘 지나가면 좋겠다.


사거리를 지나 대로변에 있는 병원 앞에 정차할 때면 늘 같은 옷을 입고 길을 지나가는 남자가 있다. 정중앙에 악어가 프린트된 티를 입은 사람인데 그 사람의 착장은 늘 똑같다. 한 여름의 옷차림도 늘 악어 반팔티였다. 하루 이틀, 삼일 째 되는 날에도 그 옷을 입었길래 나는 속으로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저분은 같은 옷이 여러 벌 있는 건가? 무더운 여름인데 땀이 안 나는 건가? 빨래를 매일 하고 건조기를 돌리는 부지런한 사람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출근길에서 자주 보는 사람 중에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분이 있다. 시장 어귀에서 계란을 팔고 계시는 할아버지이다. 한 여름에도 러닝 차림으로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뽈뽈거리며 겨우 돌아가는 약한 선풍기 바람은 그 할아버지를 닮아 보였다. 할아버지와 선풍기는 서로를 의지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더운 여름날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분의 의지가 새삼 결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 출근길에 그분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편찮으신 걸까. 며칠을 지켜봐도 할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주인 없는 계란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 출근길에서는 그분을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버스 창 밖으로 보는 세상에서 내가 뵙는 분들은 다 각자의 인생을 안고 살아간다. 내가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묵직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지도 모른다. 나 또한 다를 게 없기에 그분들에게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곳에서 마주치는 그분들과 나의 이상하고 기이한 관계. 그분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분들을 안다. 나만 혼자서 유대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이이다. 덕분에 출근길이 생동감 있게 흘러간다. 그분들을 볼 때면 나는 속으로 소소하지만 진심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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