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고독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러다 가끔 그 고독이 증폭되는 날이 있다. 일상생활을 잘 지내다가 문득 외로움이 마음속에 물밀듯이 들어찰 때가 있다. 마음속에 들어찬 외로움은 얼마 되지도 않아 금방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고인 물처럼 마음속에 고여있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 나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하고 혼자서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거리낌 없이 잘하므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실은 나도 마음속에 외로움을 품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퇴근 후 부모님께 전화드리는 것도 어쩌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내가 라디오를 좋아하는 것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도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에 잡아먹힌다고 한다. 나 또한 외로움에 잡아먹히기 싫어 발버둥 치는 것일까. 예전엔 몰랐었는데 나도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었고 주위와 연결됨을 확인받고 싶고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지난가을, 나 홀로 떠난 파주 여행에서 좋은 것도 많았지만 저녁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면 뭔가 모르는 허전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파주의 마지막 날, 숙소에서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가사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외로움이 부르는 건 참 다양하구나…. 떠나간 옛사랑이 될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라디오가 될 수도 있다.
외로운 감정이란 사람을 한없이 깊은 감성의 바다로 푹 빠지게 할 수도 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홀로 덩그러니 남게 할 수 있다. 외로움은 아티스트에겐 아이디어를 주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에게는 슬픈 생각만 던져준다.
누구나 외로움을 마주할 때가 있다. 외로움이 스쳐 지나갈 때도 있지만 어느 날은 외로움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그 외로움이 각자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고 또 혼자 성장할 시간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 외로움이란 적당히 씁쓸한 아메리카노 같다.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쓰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 달달하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맛이랄까. 나의 외로움은 짙은 고동색을 띠며 씁쓸한 향이 난다. 각자에게 외로움은 다른 얼굴로 찾아올 것이다. 어떤 색으로 어떤 향으로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 외로움에 집어삼켜지지 않길, 외로움을 마주할 여유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