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지났다.
올해의 시작은 예년과 달랐다.
매년 연말이면 본가에서 가족과 함께 KBS 연기대상을 보다가 제야의 종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새로운 해와 1월 1일로 바뀐 휴대폰 잠금화면의 날짜를 보며 새해가
되었음을 실감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떨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아빠의 어깨 인공관절 수술로 엄마와 아빠는
서울의 병실에서 새해를 맞이하셨고
B형 독감에 걸려 골골거리던 나는 동생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매년 함께였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새해를 맞이하니
뭔가 모르게 서운한 감정도 밀려왔다.
상황상 어쩔 수 없었음을 알면서도 감정의 파도는
잔잔하게 계속 들이쳤다.
새해 첫날, 처음으로 가족의 부재를 느꼈다.
지난주 설날 연휴를 맞이하여 본가로 갔다.
올해의 설날은 또 예년과 다른 명절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설날이었다.
늘 일찍 집에 내려가서 동생이랑 같이 뒹굴면서
넷플을 보던 일상도,
가족과 같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를 돕던 일상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게 되다니.
동생은 벌써부터 내가 없는 명절이 슬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의연한 척 동생을 위로했지만
마음이 저릿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은 당장 올해 추석부터 나의 부재를
느끼겠지. 그리고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새해를 맞이해서 동생과 함께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이렇게 동생과 나란히 서서 인사드리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는 사랑이 담긴 따뜻한
덕담을 해주셨다.
“우리 공주가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신랑에게
사랑받고 존중받고 인정받으며 살거라.”
아빠의 진심이 담긴 덕담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빠를 보니 절로 눈물이 나왔다.
“우리 딸 결혼 축하해. 이제 새로운 식구가 들어오겠네. 신랑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잘 살렴. “
엄마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미 울고 계셨다.
엄마 아빠의 눈물만 봐도 너무 슬프고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이 줄줄 나오는데 결혼식장에서
어떻게 눈물을 참지?
우선 지금은 결혼식장이 아니니 맘 편히 울었다.
동생과 엄마 아빠를 같이 껴안으며 잘 살겠다고
감사하다고 눈물의 새해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외갓집으로 향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이맘때쯤이면 갈색 깔깔이를 입고 계시던 외할아버지.
아궁이 앞에 앉으셔서 불쏘시개로 신문지를 휘적휘적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 외할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훨훨 떠나셨다.
외갓집의 바로 뒤 언덕에 외할아버지를 모셨기에
우리는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린 후 바로 외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마스크로 완전 무장을 하고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외할아버지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져서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계속 났다.
이번 명절 내내 부재에 대한 생각을 했다.
명절 당일 아침에 내가 없는 우리 집 모습.
나의 부재에 대하여.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안 계신 외갓집.
외할아버지의 부재에 대하여…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이번 명절은 꽤나 울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당장 올해 추석, 내가 없는 우리 집의 모습이
걱정되기도 하고 마음이 쓰인다.
물론 나도 남편 될 분과 함께 우리 집을 갈 거지만
평소랑 다른 일상이니 부재를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부재에 대하여…
부재는 슬픔이다. 하지만 또 익숙해지고 그 일상을
영위하다 보면 또 다른 부재를 맞이하겠지.
생각해 보면 삶에 있어 부재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재로 인해
서로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듯하다.
부재. 그곳에 있지 아니함. (네이버 국어사전)
인생이 영원하지 않기에 더 소중한 것처럼
서로의 존재도 언제든 부재로 남을 수 있기에
더 소중히 생각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새해를 맞이하며,
그리고 결혼 전 마지막 명절을 보내며
부재에 대해 다시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