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신경치료를 했다.
나랑 동생이랑 똑같이 먹고
양치도 곧잘 했던 거 같은데
나만 이가 썩은 게 억울했다.
치과에 가는 건 공포였고
의자에 누워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끔찍한 치료가 끝나고
내 입안에는 금니가 자리 잡았다.
그 후 일 년에 한 번은 꼭 치과에 가서
치아 상태도 확인하고 스케일링도 꾸준히 했다.
그러던 중 작년 봄, 의사 선생님에게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치아 사진을 보여주고 금니를
씌운 곳이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발치 후 임플란트를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30대에 임플란트라니
이건 내 기준엔 너무 빨랐다.
다른 이들은 괜찮은데 유독 그 이만
문제였던 거다. 약간의 우울함이 몰려왔다.
다행히 그땐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어
다음을 기약했는데 일 년을 못 가서
문제의 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견과류를 먹는데 이가 아픈 거였다.
순간 작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설마 아니겠지 하며 나 홀로 이것저것들을
씹어보며 버틸만하다고 결정 내렸다.
그러다 잇몸이 점점 부어올랐고
도저히 미룰 수 없어 치과에 갔다.
생각보다 상태는 심각했다.
잇몸 염증도 매우 심하고 잇몸뼈가 녹아내려
발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절망감을 뒤로하고 임플란트 상담을 받은 후
다시 의자에 누웠다.
함께 병원에 온 오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봤다. 오빠가 있어 든든하고 좋았다.
얼른 발치하고 오빠랑 카페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발치 과정은 기나긴 공포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잇몸에 염증이 심해 마취 주사가 잘 들지 않아
나는 그 아픔을 몸소 느꼈다. 보통은 웬만한
통증도 꾹꾹 참으며 잘 견뎌왔는데 이번 건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치료가 시작되고 고통은 점점 몰려왔다.
나는 물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온몸이 경련이 난 듯 떨렸고 식은땀이 줄줄 났다.
금니를 뺄 때도 눈앞에 별이 지나간 듯 번쩍했는데
치근을 빼는 과정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치근이 잇몸 깊이 박혀있어 여러 의료 기구들이
동원되었다. 트득트득 내 입 안에서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고 고통은 배가 되었다.
계속되는 아픔에 마취 주사를 두 번이나 더 맞았다.
서럽고 아픈 마음에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나는 어떻게든
고통을 견디기 위해 내 옷을 쥐어잡기도 하고
의자 손잡이를 손이 터지게 꽉 잡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봤는지
간호사분이 내게 인형을 안겨주셨다.
내가 너무 아파하자 약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니 내 품에는
귀여운 호랑이 인형이 안겨있었다.
의료 기구들을 보니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었다.
참혹했다.
오빠가 내 곁으로 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줬다. 차라리 자기가 아프면
좋겠다고 너무 마음 아파했다.
오빠가 곁에 있어 정말 위안이 되었다.
또다시 의자는 눕혀졌고 나는 또 두려움에 떨며
입을 벌렸다. 인형을 꽉 껴안고 눈물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치근 2개를 모두 뽑아냈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고생 많았다며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설명해 주셨지만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빠가 옆에서 설명을 잘 들었으니 망정이지
혼자 갔으면 정말 여러모로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다행히
잇몸은 잘 아물어 오늘 실밥을 풀고 왔다.
5월에 임플란트 시술 날짜를 예약하고 왔는데
마음이 무겁다. 내 잇몸에 나사를 박는 건
또 얼마나 아프려나.
아래쪽 어금니 없이 며칠 지내다 보니
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오복 중에 하나가 치아 건강인건지
몸소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이가 빠져나가 허전하고 휑한 이 마음은
뭘로 채울 수 있을까.
고생해서 뽑은 금니를 팔아서 맛있는 거 먹고
힐링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