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표정으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들.
그 회색빛깔 지하철 안에서 아이는
까르르 웃는다. 혼자 까르르르 자지러지게 웃는다.
무표정의 어른과 웃는 아이의 모습이 대조되는
짧은 몇 컷의 만화.
내가 참 좋아했던 책 파페포포 시리즈 중 한 장면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초등학생의 나는 생각했다.
어른들은 왜 그리 어두운 표정을 지을까?
아무런 감흥도 없이 감정 없는 눈빛의 어른들이
무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몇 번의 강산이 바뀌고 나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책이나 신문이 아닌 스마트폰을 보며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어른들.
나도 그 어른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따금 숏츠에서 웃긴 장면이 나오면
피식 웃긴 하지만 또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오히려 웃고 있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다 큰 어른이 해실 거리고 있다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볼 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지하철 타는 것도 재밌고 사람들 보는 것도
재밌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아서
모든 게 새롭고 좋았다.
지금은 모든 게 익숙하고 무던해졌다.
굳이 웃을 일도 없고 무표정이 제일 편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일까.
감정이 다양해지기보단 좀 더 깊어지고
새로운 것보단 익숙한 게 많아지는 것.
누구나 다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호기심 대마왕에 사고뭉치,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우리가
이렇게 회색 인간이 된 건
생각보다 고된 삶을 살아내느라 그런 것이 아닐까.
사회에 나와서 제 밥그릇을 지켜내느라
나이가 듦에 따라 더해지는 막중한 책임감에
여유를 잃고, 감성을 잃고, 웃음을 잃은 채
무채색 인간이 되어가는 거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길거리를 걷다 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좋지만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참 반갑다.
지인과 통화를 하며 웃는 사람들,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미소 짓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의 웃음보다 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내 강아지 깜순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맞은편에서 무뚝뚝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사람이
무장해제 된 것 마냥 해사하게 웃는 모습을
종종 본다. 깜순이를 사랑스러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윽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짧은 눈 맞춤을 한 후 다시 무표정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짧은 시간이라도
하루 24시간 중 단 몇 초라도 웃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따라 웃게 된다.
그래서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나보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하루에 웃는 시간이 몇 초나 되는지
알아요? 5초도 안된대요. “
사회적인 미소, 의무적인 웃음 말고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음은 하루 중 얼마나 될까.
흔하지 않아서 더 소중한, 진심이 묻어난 웃음.
가족끼리 그리고 친구, 동료끼리
그런 웃음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각자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가 때론 버겁고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찰나의 웃음으로
잠시나마 쉴 수 있길.
텁텁한 일상에 웃을 거리가 많이 생겨서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돈에서 오는 여유도 좋지만
잠시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얼마나 좋은가.
나에게도 그런 여유가 찾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