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수에르떼

몇 달 전 예약해 둔 깜순이의 스케일링 수술날이

다가왔다. 언제부터인가 두텁게 쌓인 치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병원에 깜순이를 맡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긴 곳은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서가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을 보니 안정감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 동안 다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집이 눈에 들어왔다.

책 제목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어릴 적 명작 전집으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어 다시 읽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책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찢어지게 가난한 구두 수선공 시몬이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남자를 집에 데려 오면서 생긴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은 미카엘이고

하느님께 벌을 받는 중이라며

그 외에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를 외면하려 했던 시몬은 자기 마음속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 남자에게 겉옷을 벗어주고

집으로 데려온다.


외투 살 돈도 없는 시몬이 정체 모를 남자를

데리고 들어오자 그의 아내 마트료나는 표독스럽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시몬은 그 남자를 만나게 된

상황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당신 마음에는 하느님이

없냐며 어떻게 이 사람을 그냥 두고 올 수 있었겠냐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마트료나의 마음속에 연민이 풍겨 나와

그녀는 미카엘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지내는 것에 동의를 한다. 그때 미카엘은 첫 번째 미소를 짓는다.

시몬은 미카엘에게 구두 수선 기술을 배우길 권했고 미카엘은 곧잘 배웠다.


어느 날, 덩치가 산만한 부유한 남자가 나타나

1년 동안 신을 수 있는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시몬은 미카엘에게 장화 만들기를 맡기는데

미카엘은 장화 대신 슬리퍼를 만든다. 당황한 시몬은 미카엘에게 따져 묻지만 미카엘은 미소로 답한다.

잠시뒤 남자의 부하가 찾아와 주인님이 죽었으니

수의용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미카엘이 시몬의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6년이

넘었을 때쯤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온 여인이 손님으로 찾아온다. 미카엘은 쌍둥이 자매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본다. 자매 중 한 아이는 다리를 절고 있어

시몬이 여인에게 이유를 묻고 그녀는 놀라운 이야기를 해준다.


실은 자매들은 친부모를 잃고 오갈 데가 없어 자신이 거둬들인 아이들이고 다리를 저는 이유는 친엄마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자기에게도 친아들이 있었으나 금방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자매들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답변을 들은 미카엘은 마지막 세 번째 미소를 짓고

그 손님이 떠난 후 시몬과 마트료나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야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벌을 받은 천사였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였다.

미카엘은 마트료나의 행동에서 그 답을 찾았다.

처음에는 낯선 이였던 자신을 경계하고 표독스럽게

쏘아대기 바빴는데 시몬의 하느님 이야기를 듣고

연민의 마음이 일어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 질문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미카엘은 1년 동안 신을 장화를 주문했던 부유한 남자의 뒤에 서있는 죽음의 사자를 보았다. 당장 오늘

죽는지도 모르고 1년을 내다보고 있는 그 남자를 보며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마지막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미카엘은 친자식이 아닌 쌍둥이 자매를 극진한

사랑으로 키워낸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걸 알았다.

즉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답을 얻은 거다.




결국 사람 마음 안에는 사랑이 있고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진 모르지만,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를 아끼고 걱정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뻔하고도 진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런 뻔한 이야기도 저렇게

전개되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인간의 삶은 석가모니의 말씀처럼 고통의 연속이다.

태아 때는 따뜻한 엄마의 배 속에서 아늑하게

있었지만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호흡을 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바쁘다.


나이를 하나씩 먹어가며 성취감도 느끼지만

패배감도 함께 배우며 인생이 쉽지 않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다. 희로애락 중 분노와 슬픔이

인생의 디폴트 값인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 사랑은

갈등의 봉합제요, 삶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 윤활제의 역할을 한다.


각자 마음속에 사랑이 있어 선행을 보면 인류애를

느끼기도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몰라도

서로 더불어 살며 부족한 점은 서로 채워준다.

사람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이 책을 읽으니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가 떠올랐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실패와 고뇌의 시간은 비켜갈 수 없으며

세월의 흐름에 꽃이 지는 것도 어쩔 수 없으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해답은 사랑이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분노와 슬픔으로 팽배한

세상이지만 판도라가 마지막으로 남긴 희망은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단절된 마음을 이어주고 그 마음들은

연대가 되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사랑은 개개인의 마음 안에서 살아 숨 쉬며

이 세상을 지탱하는 근원이 된다.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살아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백 년 전의 사람인 톨스토이도 아는 이 내용을

우리가 모를 리 없을 텐데 2026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왜 아직도 혐오와 비난 속에서 상대와

편을 나누고 급을 나누며 차별하고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란 희망의 불꽃이

약해진 걸까?


사랑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희망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도록

세상에 사랑이 더 가득하길 …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걸 모두가 절실히 느끼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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