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로.
귀엽고 톡톡 튀는 작가의 이름처럼
책 제목도 상큼 그 자체이다.
자몽살구클럽.
하얀 배경에 귀여운 과일 일러스트 디자인까지
하나같이 모두 상콤 달콤한 책.
그런데 그 안의 줄거리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이 책의 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심지어 책 뒷면에 적혀있는 글도 읽지 않은 채
본문을 바로 읽어서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책은 상큼 달달한 시트러스 향이 풍겨 나오는
청춘소설이 아니었다.
검붉은 피냄새가 짙게 배긴 비극적인 청춘들의
슬프고 처절한 이야기였다.
자몽살구클럽.
이 단어에서 ‘몽’ 자와 ‘구‘자를 빼면
이 클럽의 진짜 목적이 나타난다.
죽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죽어선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가슴 아픈 아이들의 비극적인 연대가
이 클럽의 진짜 의미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하는 알코올중독인 아빠로 인해
엄마와도 생이별하고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살고 있는 중학생이다. 소하는 우연히
자몽살구클럽이라는 동아리를 알게 되고
티켓을 들고 음악실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털털하고 유쾌한 성격의 태수,
그런 태수와 초등학생처럼 티격태격하는 유민,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보현을 만나게 된다.
죽고 싶었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살고 싶은 그들은 서로에게 점차 위로가 되어준다.
서로를 죽음에서 지켜주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동아리.
죽고 싶어서 모였지만 마무리 구호는
살구 싶다!
살구 싶다!
살구 싶다!
큰 소리로 삼창을 해야 하는 동아리.
한 사람당 20일의 유예기간이 정해지고
그동안 그 사람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부원들이 함께 이유를 찾고 도와주는 게
자몽살구클럽의 유일한 활동이자 규칙이다.
여름방학까지 모두 살아남는 게 목표인 그들의
애처로운 사투가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슬프디 슬픈 이유로 모였으나 그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만나면 까르르 웃기도 하고
서로의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기 위해
누구보다 애쓴다. 상처를 드러내고
또 말없이 안아주며 그들의 연대는 더 끈끈해진다.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보현은
아픈 엄마의 불어난 병원비를 갚아야 하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엄마의 병원비를 갚기 위해서는 돈을 빨리 버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이모의 말을 듣고 좌절한다.
보현은 이런 버거운 현실에 차라리 엄마를 따라
가고 싶어 한다. 희망이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보현이를 위해 부원들은 보현이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읽어본다. 그리고 기꺼이 영화 등장인물이 되어주며
보현이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태수는 그저 디데이까지 재밌게 놀아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우르르 미용실로 몰려가
브릿지로 금발 염색도 하고 졸업사진 촬영 때
자몽살구클럽 동아리 이름으로 다 함께 사진도 남긴다.
그러던 어느 날 태수의 어머니가 교무실을 찾아오고
태수는 많은 선생님들이 보는 곳에서 뺨을 맞는다.
그리고 며칠 후 악기 보관실로 들어오는
태수의 몸에는 무수한 상처들과 멍자국이 가득하다.
오늘은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며
태수는 아스피린이라는 음악을 틀고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배가 찢어지게 웃는다.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외쳐대던 그녀는 다음날 학교의
팬지꽃이 피어있는 화단 옆에서 발견된다.
유민과 보현, 수하 못지않게 나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부원들이 학교 옥상에서 모여서
몰래 심어뒀던 토마토 화분 안에서 태수의 편지를
발견했을 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편지를 읽는 동안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부르며,
개개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마음이 저릴 만큼
따뜻한 편지였다. 자기는 세상을 떠나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다친 발을 걱정하며 그들의 수호신이 되어줄 테니 반드시 살아남아라는 말로 편지는 끝맺었다.
누구보다 강하고 활발한 성격의 태수.
하지만 태수는 그 누구보다 상처가 깊었고 깊다 못해
곪아터졌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낭떠러지로
떠밀린 그녀는 편지를 남겨두고 팬지꽃 옆에 남겨졌다.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남겨진 유민이와 보현, 그리고 소하는
너무나도 대견스럽게 우울한 고비를 넘기고
함께 울고 슬퍼하며 태수에게 작별인사를 남긴다.
유민이는 태수가 생전에 좋아했던 음악선생님을
찾아가 태수의 편지에 답장하는 의미로 부르는
노래의 반주를 부탁한다.
유민이는
진심을 담아
눈물을 담아
그리움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
하늘나라에 있는 태수에게 닿을 만큼 큰 소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 주인공,
안쓰럽고 불쌍한 우리 소하.
소하는 아빠에게 무수한 폭행과 폭언에 노출되면서도
자몽살구클럽 활동으로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었다.
소하는 어릴 적 생이별한 엄마를 찾고 싶었고
사연을 들은 착한 부원들은 발 벗고 함께 나선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엄마를 찾게 되지만
이미 엄마의 곁에는 자상한 남자와 솜털 같은 아기가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해사한 표정을 지으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소하는
큰 충격에 빠져 눈물로 서러움을 토해낸다.
기껏 찾은 활기는 눈 깜짝할 새에 도망가버리고
우울하고 어두컴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태수의 납골당에 챙겨간 소주가 발단이었다.
냉장고에서 아빠의 소주를 훔쳤다가 들통이 났고
소하에겐 무자비한 아빠의 발길질과
흉측한 욕설이 비수처럼 파고든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소하의 슬픈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부어오른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마저도 소하를 아프게 했다.
엄마 옆의 솜털 같은 아기,
그 아기의 사랑을 자기가 받을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걸 빼앗아간 아빠에 대한 원망이
그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결국 소하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아빠에게 처참한
응징을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응징을 하고 만다.
이성이 돌아온 소하는 자신이 한 행동과 마주한다.
정작 죽고 싶은 건 자신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소하는 무작정 집을 나와 도망친다.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너무나도 살고 싶어 그랬다고
살고 싶다고 외쳐도 되는지 제발 알려달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난 다음 든 생각이었다.
소하의 처절한 절규로 끝난 이 책을
나는 다시 꺼내 볼 수 있을까.
소하의 절규가 메아리처럼 계속 들려온다.
작고 가녀린 소하가 혼자 감당해야 했을
수많은 아픔들을 난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 누구도 소하가 겪은 비극의 무게를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마음으로 살지.
살려는 의지가 부족해.
우리가 감히 그들의 아픔을 재단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없고
아는 척해선 더욱 안된다.
그들의 슬픔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전문가가 있는 거다.
태수와 유민, 보현, 그리고 소하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줬다. 관심을 주고 위로를 받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전문가처럼 자기들끼리
유예기간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살아남을 이유를
함께 찾아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줬다.
네 아이의 상처가 모두 회복되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실은 그렇게 쉽게 해피엔딩이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적인 끝맺음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
이 네 아이들은 허구의 인물이 아닐 거라고.
현실에서 수천 명의 태수가 죽음을 다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픔이 있는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책이라고.
상큼한 표지에 끌려
박정민 배우가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로
이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책장을 닫았을 땐
귓가에 울리는 정체 모를 이명처럼
마음속에 이명이 남았다.
귀에 물이 찬 것처럼 심장에도 물이 찬 것 같다.
울컥하고 마음이 시리게 저려 온다.
가슴이 아프다가도 처참한 현실에 화도 난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고통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다짐에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태수와 소하를,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도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는 보현을, 꿈이 없어 방황하는 유민이를
괜찮다고 안아주고 싶다. 지켜주고 보호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 살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더 발버둥 친
소하와 보현, 태수, 유민이…
아이들의 이름이 너무나도 아리게 기억될 것 같다.
자몽살구클럽이라는 책의 제목도,
이 책의 표지도 너무나도 아프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