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때에 따라 능력과 기술이 우수해야 하는 일과, 그것을 넘어선 사명감이 없이는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의료인, 종교인, 군인, 관공서 공무원 등, 그중에 사람을 길러내는 교사는 더욱 그러하다.
맞벌이를 하느라 현재 중1인 막내를 백일도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출산휴가 3개월 뒤에 육아휴직 1년을 연달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젖먹이를 떼어 놓고 뒤돌아 나올라치면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 하다가도 불어나는 젖을 휴게실에 가서 유축기로 짜야했다. 모인 몇 봉지의 모유는 냉동고에 바로 얼려서 보냉가방에 담아서 퇴근했다. 그것은 다음날 아이가 일용할 양식이었다. 어린이집을 알아볼 때 제일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이 모유를 데워 먹여 줄 수 있는 곳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별난 엄마였다.
말로 의사표현을 못 하는 아이를 걱정하지 않도록 어린이집 교사는 하루일과를 육아일지에 하나하나 적어서 가방에 넣어 보냈다. 나라면 못 했을 일이다. 한 명의 교사가 아이들마다 일일이 세심하게 적어서 보냈을 것을 생각하니 안심이 되면서도 어느 틈에 다 적었을까 싶어서 안쓰러웠다. 어떤 곳은 어린이집에서의 일상을 찍은 CCTV화면을 휴대폰 앱으로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일부 교사의 아동학대로 시작된 불신이 가져온 결과라서 참 씁쓸했다.
반면, 어린이집 선생님인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의외의 상황이 많았다. 오히려, 육아일지에 답글 한 줄 적지 않고 그냥 보내거나, 아침에 깨끗하게 씻겨서 엉덩이가 보송하게 기저귀를 갈아서 보내는 것이 상식일 텐데도 밤새 채워둔 기저귀를 그대로 보내는 엄마도 왕왕 있었다고. 등원하는 아이를 보면 집에서 보살핌이 보이는데 나중에 불평을 하고 선생님을 의심하고 몰아세우는 쪽도 평소 가정 돌봄이 부족했던 집 엄마 일 가능성이 많았다고 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 아이 귀하지 않은 집이 어디 있을까. 점점 결혼 적령기도 늦어지고 임신연령도 높아지고 있으니 두 말도 필요 없지. 하지만, 귀하다고 인간됨을 가르치지 않으면 인간이 안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독립적으로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끼고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이 대신해서 부모가 가르칠 수 없는 영역까지 가르쳐주는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보육기관으로 아이를 돌보고 보살피는 곳이다.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서로 도와주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인성을 기르는 것에 비중을 조금 더 둔다.
학교는 교육기관으로 지식과 기술을 기르며 인성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정의처럼 얘기가 달라진다.
마음가짐부터 아이에게 단단히 일러둔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마음대로 하면 안 되고, 손 들고 말하고, 인사 잘하고, 골라 먹지 말고,......" 신신당부할 것이 끝도 없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선생님에게 맡겨 놓아야 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에 입학하면 저학년 때는 옷에 변을 지리고 올 때도 있고, 가방이나 물건을 놔두고 올 때, 실내화를 신고 그냥 올 때, 갑자기 오는 비에 홀딱 젖어 올 때, 늦잠 자서 지각할 때, 아이들과 어울리다나 다쳐서 올 때 등
많은 돌발 사건을 겪게 된다. 그럴 때일수록 전전긍긍하면 안 된다.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무관심이 아니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실패와 실수를 많이 경험해야 한다. 사과와 화해, 용서도 배워야 한다. 정작 사회에 나갔을 때 안전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늘 서이초 교사 사망 49재 일에 공교육 멈춤의 날로 칭하고 들어주는 귀 없는 거리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지켜야 하는 교사들의 심정이 어떠할까!
우리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자다. 공장에서 제품 생산하는 노동자보다 못하게 취급한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다. 달리 말하면, 아이들을 붕어빵 기계 같은 교실에 몰아넣고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다가 속이 터진 붕어빵을 걸러내듯이, 불량 붕어빵을 생산했으니 교사더러 물어내라는 식이다. 스스로 문제해결을 할 수 없는 인격체가 되어가는 자기 자식보다 학부모 본인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가정교육 혹은 밥상머리교육이라고 인성은 집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것을 망각한 학부모는 선생님에게 인성이 덜 완성된 아이를 맡겨 놨음에도 믿고 따르기는커녕 되려 망가뜨리고 있다. 그러면서 왜 교사를 탓하고 협박까지 하는가!
몇몇 제목소리를 내면서 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육감이 있어서 교사들 입장에서 공교육을 지키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예산은 축소가 되어서 공수표로 전락하지 않겠나 하는 낙담만이 메아리치고 있다. 언제나 바뀔까. 참담하다.
이하 뉴스기사를 인용하면서 서울 서이초 교사와 이후 교사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을 보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