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감상한 예순여섯 편의 영화들에게
19년부터 인스타 스토리에 짤막한 영화 감상을 아카이브하며, 좋은 영화는 결국 나에게 좋은 영화라는 믿음이 점점 강해졌다. 그러나 나에게 좋은 영화는 또 무엇이람? 내가 사랑한 영화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를 갖고 있다. 오직 한 장면 때문에 사랑을 선언하기도 하고, 그 영화가 일상으로 전이되는 우연한 순간에 도취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두 시간 남짓한 영화 감상의 시간은 내게 하나의 경험으로 다가오며, 그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경우에 나에게 좋은 영화라 말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본 거의 모든 영화들은 이러한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 하려는 작업이 작품의 우열을 가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이유들로 내가 지난 한 해 영화들을 사랑했는지 스스로 복기하고, 자의식을 발휘하여 감사와 크레딧을 전하고자 함이다.
2020년 나는 단편을 포함하여 총 예순여섯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 옛날의 <시민 케인>부터 이제 막 넷플릭스에 공개된 신작까지. 이들 모두가 지금부터 시작할 오만한 시상식의 유력 후보들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거나, 누구의 추천도 받지 않았던. 당장 보고 싶은 작품이 없는 탓에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런 작품들에서 의외의 소득을 얻을 때 나는 줄곧 흥분한다. <에놀라 홈즈>에서 밀리 바비 브라운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또는 <조조 래빗>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에게 한 방 먹었을 때. 박찬욱 영화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친절한 금자씨>를 보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고, 내가 그 시기에 태어났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를 두고두고 좋아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 부문의 승자라면 역시 <언컷 젬스>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언컷 젬스>를 본 것은 오직 작년 아카데미 시즌에 이따금 언급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사프디 형제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아담 샌들러에게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는데. 영화 자체가 일종의 편집증에 걸려버린 듯한 느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내러티브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한 인물이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는 영화는 많지만, 시작부터 파멸까지 하이햇으로 쪼개는 듯한 빠른 리듬으로 끌고 가는 영화는 흔치 않다. 시작부터 최고 속도로 제동 없이 달리다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한동안 얼얼한 상태로 정신을 못 차렸던 건 땅과 부딪혔을 때의 얼얼한 감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좋게 다가오는 것은 충격의 경험이다. 반면 기대했던 작품이 기대만큼 좋게 다가오는 것은 설렘과 행복의 경험이다. 제작 과정부터 기대를 가지고 지켜봐 왔던 작품을 끝내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설렘을 가져다주고, 그렇게 들뜬 상태에서 나의 가장 사소한 취향이라도 건드리게 되는 순간 곧바로 행복으로 치환된다. 그래서 기대에 온전히 미치지 못하더라도 쉽게 실망을 하지 않는 것일까? 많은 혹평을 받았던 <사냥의 시간>이 나에게 그런 경우였다. <파수꾼>의 감독이 만든 한국 배경의 디스토피아 영화,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경험을 선물한 영화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름다움에 다시금 황홀함을 느꼈으며, 그 명성으로는 따라갈 작품이 없는 <시민 케인>을 드디어 봤다는 것도 나름의 성취였다. 앞서 언급한 <언컷 젬스>를 본 뒤 자연스럽게 찾아본 사프디 형제의 전작 <굿타임>도 마땅히 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을 봐 놓고서 내가 다른 작품을 승자로 올릴 수 있을까? PTA는 나에게 일종의 종교다. 그의 작품에서 난해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더 공부해 봐야 할 일이다. <매그놀리아>의 개구리 비로 시작하여 <마스터>의 면담 씬까지, PTA의 영화들은 어떤 지점에서 반드시 모든 감각들을 곤두서게 만든다. 올해 뒤늦게 본 <부기 나이트>에서도 그런 흥분을 느꼈으나, 넷플릭스에 공개된 단편 <아니마> 만큼은 아니었다. 세간에서는 좀 세련된 뮤직비디오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았으나, 그 세련된 광기에 어찌 할 도리가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톰 요크의 음악에 맞춰 승객들이 패턴은 있지만 질서는 없는 춤을 추기 시작할 때, 잠시 일시정지를 하고 숨을 골라야만 했다. 진짜다.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들을 따로 부문으로 만들어야 할 만큼 더 이상 영화는 극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2020년의 감상작 가운데 영화관에서 본 것이 채 열 편도 안 된다. 코로나 시국과 군인이라는 안타까운 신분이 더해져 유독 극장을 못 간 해였다. 한참 전에 도래한 넷플릭스의 시대는 관객 입장에서 물론 반가운 혁명이다. 그러나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영화적 경험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부문의 승자는 극장에서의 경험을 극대화시킨 영화가 될 것이다.
<포드 v 페라리>는 ScreenX 상영관(3면을 스크린을 활용하는 상영관)에서 관람했는데 확실히 돈값을 했다. 뼛속까지 울리는 배기음도 한몫 거들었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영화 자체로는 크게 와 닿는 것이 없었으나, 연인과 함께 보았음에 당당히 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누구와 같이 보는지는 두말할 것 없이 극장 관람의 키 포인트이기 때문에. 재개봉한 <위플래시>도 같은 이유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문 유력 후보였던 <테넷>은 영화관에서 본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상영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좀체 몰입할 수가 없었다. 놀란의 영화를 보며 한 번도 귀를 찢는 폭발음이 안 들린 것이 말이 되는가? 여담으로 올해 아트나인에서 관람한 영화가 한 편도 없음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2020년 극장에서 기대하는 것을 가장 완벽에 가깝게 충족시킨 작품은 샘 멘데스의 <1917>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터. 롱테이크보다 빠른 전환의 몽타주를 선호하지만 <1917>의 촬영 기법은 내내 넋 놓고 볼 수밖에 없도록 작정을 했다. 흡사 아테네의 전령 페이디피데스의 여정을 쫓아가는 기분이었다. 전쟁 영화 특유의 장관도 장관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한 흐름에 끝까지 보아야만 한다. 그러니까 핸드폰으로 보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오는 등의 불상사가 없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1917>은 언젠가 분명 재개봉을 할 텐데, 그때가 되면 굳이 안 본 눈을 사지 않아도 또 무한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언급한 모든 영화들이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지금까지의 부문들은 좋아하는 이유로 꼽기에는 좀 민망하다. 시상식으로 따지자면 아직 본상에 들어가지 않은 셈. 2부가 진짜배기다. 중복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을지도 눈여겨보자. (아마) 다음 주 이맘때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