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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Jan 31. 2021

93. 제1.9코스

아부다비


  우리는 바다 건너 서로를 알았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이자 일곱 개 연합국 중 하나라 했다. 나는 그 개념을 두어 번 더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 나의 시간은 너보다 빨랐다. 내가 일어났을 때 너는 아직 꿈 속에 있었고 내가 잠이 들 때 너는 아직 깨어 있었다. 사실 우리는 그 시차마저도 소중했다. 우리가 보는 달의 위상은 달랐고 우리가 듣는 매일의 언어는 달랐다. 사실 우리는 그 거리마저도 소중했다.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이미 비대면의 사랑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단절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끊임없이 연결점을 찾았다. 온라인 동거는 그 자체로 행복이었으며 또한 종식에 대한 기대였다.
 
논산


  모든 이들이 우리의 단절을 경험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내가 논산을 가기 일주일 전 너는 한국에 돌아왔다. 판데믹이 모든 이별을 실존으로 만들 때 우리는 짧은 환상을 누렸다. 신기루 같던 일주일을 뒤로 우리의 지형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는 바다를 사이에 두지 않는 대신 온라인 동거를 금지당했다. 우리는 같은 달을 볼 수 있게 된 대신 동시에 그 위상을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이따금 주어지는 짧은 통화를 제외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매일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무력함의 표현이었으며 때로는 의지의 확인이었다. 그 글들은 일주일 뒤에나 서로가 마주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차의 발견이었다.
 
제주


  현대적 소통이 거세되었던 훈련소 생활을 끝으로 나는 제주로 발령이 났다. 우리는 또 다시 바다를 건너 존재했다. 온라인 동거는 다시 시작되었으며 나는 네가 보고 싶어하던 바다 사진을 한 움큼 보내주었다. 같은 달을 보면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판데믹은 더욱 무서워졌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단절은 지루하지만 형형한 실존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몇 차례 무산되었고 이런 거리에 익숙함을 느꼈던 우리 사이에도 우울함이 싹텄다. 잡을 수 없는 것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은 달랐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기연민의 수렁에서 발을 빼는 순간들에 우리는 손을 잡은 듯 행복했다. 그 행복으로 며칠을 또 살아갔다.
 
문래


  나는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사랑의 역사를 기술한다. 닿지 않아도 느끼는 마음을 닿지 않고도 내보인다. 언젠가 우리는 또 다른 거리와 시차에 의해 무참히 폭격 당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피폭되는 삶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는 것들을 써 내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다를 수 없다고 여겼던 활자들을 전시의 끝무렵에 겨우 만났다. 판데믹이 잠시 숨고르기를 해준 덕분이지만 그 찰나는 벌써 과거가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단절이 익숙해야 할 관계지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는 이별은 역시나 적응되지 않는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나는 오래 전 종착지에 다다른 이 글을 마지막으로 안치시킨다. 영영 다다를 수 없지만 언제나 가닿을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가 처음으로 동거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돌고 돌아 이 역사는 결국 몇 바이트에 세를 내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우주의 티끌만 못한 사랑에도 억겁의 세월이 있으니, 이 코스가 모두의 것이 되어도 사실은 여전히 우리 둘만 걷는 것이다.


(원제: HOW TO DEAL WITH UNTACT EMOTIONS BY UNTAC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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