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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Feb 28. 2021

94. 당신은 이제 글을 쓰지 않는가?

  당신은 이제 글을 쓰지 않는가? 당신이 이제 글을 쓰지 않아서, 나는 이제 친구가 없다.

  아니면 당신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가? 그 사이에 당신의 글이 더 개인적인 것이 되어서, 개인이 아닌 곳에서는 당신의 글을 볼 수 없는가? 아니면 당신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데도, 나의 시선이 당신에 닿지 못해서 가려진 것인가? 내가 얼마간 글을 쓰지 못해 허우적거리던 때, 당신도 나와 같은 의문을 품었는가?

  아니면 당신은 이제 정말로 글을 쓰지 않는가? 당신에게 글이란 이제 꿈은 고사하고 가벼운 취미로도 남지 못하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글이 당신을 삼켜버릴까 봐 두려웠는가? 당신은 이제 사랑을 하지 않는가?

  여하간 나는 이제 친구가 없다. 내가 희박한 확률로 얻게 될 영광도 오로지 나의 것이고, 높은 확률로 얻게 될 수모도 오로지 나의 것이다. 당신은 나를 보며 혀를 차는가? 아니면 나에게 미묘한 질투를 느끼는가? 아니면 인류적인 관점에서 최후의 보루를 잃지 않았다며 안도하는가? 나 또한 누군가의 친구이기를 포기했을 때, 당신은 나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조소를 보낼 것인가?

  그렇지만 당신은 사실 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음을 안다. 당신이 사실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님도 잘 안다. 당신과 내가 사실 여전히 친구라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매사에 진지한 적이 없으므로, 이 역시 그닥 진지할 것 없는 일련의 농담이다. 아니면 약간의 어리광이 섞인 자기기만인가?

  어차피 이 물음은 당신에게 무해한 것이 아닌가? 당신이 무해하게 물어오는, 당신은 이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가, 당신은 이제 돈을 벌 생각이 없는가, 당신은 이제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등의 말들과 같은 게 아닌가? 그래서 당신은 이제 글을 쓰지 않는가? 그냥 그게 궁금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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