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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창인 Nov 19. 2020

92. 한강의 밤 부제는 사랑

4.
둘은 각자가 좋아하는 시를 외기로 했다
 연극의 마지막 장이었다

1.
그녀가 릴케를 읽을  그는 실러를 읽었다
그래서 모두가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달빛과 가로등 불이 뒤섞인 윤슬 위에서

젊은 남녀의 진부한 수작
고상다리를  낚시꾼의 기다림
주정뱅이가 질겅 씹어대는 오징어 다리

따스한 무관심으로 서로의 무대를 침범하지 않았다
누구의 잠도 깨울  없는 목소리들이 떠다녔다 반딧불처럼

주인공인 동시에 관객이었다
 자신마저도 둘을 감상하고 있었다
관조로 연대하는 서울의 외딴 한가운데

2.
뻗은 한강이  사이를 가로질렀다
자전거를  둘은 경계선을 따라 달렸다

서울은 둥그니까
밤새 달리면 다시 여기 어느 대교와 대교 사이
다다를 것이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고

아예 하늘로 날아올랐던 추억의 영화를 그리며
잠시 사람됨을 잊고 무엇이든 돌이킬 수만 있을  같은 환상에 빠졌으나

3.
허벅지는 여지없이 저릿해왔다
중력에 지배당한 
극으로 돌아오라는 신호 체계에 따라

그들이 눌린 묵직한 대교 아래는
달빛의 사각지대였으나
밤하늘의 어슴푸레한 물그림자로 인하여

어느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국군의 제트
그것은 강류를 거슬러 유영하는 별똥별

사람으로 살면서도 날아오를  있을까

밤새 토론하는 것쯤으로는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고

5.
핸드폰 대리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처럼
익숙한  구절을 외고 그녀는 한강의 밤이라 했다

작자 미상 한강의 

너무 많이 노래된 탓에 누구의 것도 아닌
사랑처럼.

이제 그는 시인이 되어도 좋겠다고
 아득한 경계선을 넘어도 좋겠다고

관조로 연대하는 서울의 외딴 한가운데
달빛과 가로등 불이 뒤섞인 윤슬 위에서

우리는,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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