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탄>(2021)과 <드라이브 마이 카>(2021)

어떻게 울타리를 넘어 타인을 바라볼 것인가

by 백창인

1.

너무 익숙해서, 때로는 그것이 기술임을 잊게 되는. 괜히 생명력이 있다고 믿고 싶고, 남몰래 이름도 붙여보는. 그런 기술들이 있다. 내가 아이폰 이야기를 쓴 것처럼. 또 하나의 대표적인 기술이 있다. 자동차.


2.

자가용이 있든 없든, 자동차와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하루는 손에 꼽게 드물 것이다. 자동차는 사람이 만든 기술이지만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사람과 함께 움직이며, 사람을 품고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가 자동차를 그저 조물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우리는 자동차와 필연적으로 관계하며 살아간다.


3.

자동차를 주된 오브제로 삼는 두 편의 영화가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개봉했다. <티탄>과 <드라이브 마이 카>. 전자는 올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후자는 각본상을 받았다. <티탄>의 자동차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자동차는 외형이 많이 다르다. <티탄>의 자동차는 화려하다. 대놓고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를 유혹하려는 듯 정열적이다. 반면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자동차는 조용하다. 온통 무채색의 차들만 달리는 도로에서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빨간 차는 유난히 돋보이지만, 그럼에도 침묵한다.


4.

그러나 두 영화에서 사람이 자동차와 관계하는 방식은 미묘하게 닮아 있다. <티탄>은 삶을 죽이는 데서 삶을 살리는 데로, 마침내 삶을 만드는 데로 나아가는 영화다. 알렉시아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에 티타늄을 박고 살아간다. 삶을 죽이던 때의 그녀는 사람을 혐오하기에, 사람과 자신을 분리할 울타리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는 머리의 티타늄이 그 역할을 하고, 조금 더 자란 뒤에는 자동차가 역할을 이어받는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성의 공간. 자신을 다른 삶과 완전히 격리시키는 안식처. 따라서 알렉시아의 자동차는 그녀 이외의 다른 삶을 수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태워봤자 시체뿐이다. 알렉시아가 자동차와 성애적 관계를 맺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극의 후반부에 알렉시아는 뱅상(뱅상 랭동)의 소방서로 거처를 옮긴다. 삶을 살리는 곳, 또는 (철을 녹이는) 불을 다루는 곳. 그곳으로 가는 길에 알렉시아는 뱅상과 동승한다. 자동차와 자신뿐이던 그녀에게 동승은 큰 의미를 가진다. 소방서로 이동한 그녀의 삶에 더 이상 화려한 자동차는 없다. 알렉시아의 마음이 열릴수록 자동차의 중요도는 떨어진다(물론 소방차에 집착하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정체성의 혼란이 드러나지만). 그러나 강박적으로 자신의 임신을 숨기던 데에서 마침내 뱅상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낳았을 때. 이제는 금속이 그녀를 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금속을 품는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온 듯한 형상의 아기는, 사실 알렉시아가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왔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5.

<드라이브 마이 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영화다. 자신의 아픔과 죄를 안고, 타인을 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끝까지 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완치될 수 없고 끝까지 달고 살아야 하는 가후쿠의 녹내장처럼. 아내의 죽음 이후로 가후쿠 역시 자신의 빨간 차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차를 대신 운전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여기에서 가후쿠의 자동차는 안식처보다는 그의 아픔과 죄 자체에 가깝다. 가후쿠는 그것을 늘 혼자 안고 다녔으며, 녹내장으로 인해 좁아진 시야로 불안과 함께 몰았다.

자동차의 의미가 전이되는 것은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미우라 토코)가 등장한 이후부터다. 가후쿠는 못마땅해하며 미사키에게 운전대를 맡기지만, 그녀의 능숙한 운전과 침묵에 곧 마음을 연다. 비로소 동승이다. 둘은 차 안에서 자신의 아픔과 죄를 공유하며, 그럼에도 다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다. 그리고 가후쿠의 차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로 박살이 났어도 멀쩡하게 다시 달리지 않는가. 마침내 가후쿠의 차는 미사키가 물려받는다. (아마도 윤수 씨네 집에서 데려왔을) 강아지를 태우고, 여전히 자신의 삶을 운전해 나가며.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6.

삶. 사람. 기술. 자동차. 영화. 다시 삶. 이런 것들의 반복이다. 너무 익숙해서, 때로는 그것이 기술임을 잊게 되는. 때로는 그것이 삶에 비유가 되는. 자동차가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자동차를 다루는 영화가 그렇고. 어떻게 울타리를 넘어 타인을 바라볼 것인가. <티탄>과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동차로 이런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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