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면 우측을 기계적으로 누른다. 보려고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걸 보기. 인스타그램 스토리.
그런데 죽은 이미지들이 문득 삶을 얻는 경우가 있다. 어떤 알고리즘의 농간으로. 가령 이런 경우.
두 인물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같은 대상을 찍어 올렸다. 스캔들은 기대하지 말자. 장담컨대 둘은 서로를 모른다.
나는 이 기막힌 우연을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두 스토리가 연달아 있지 않았다면.
2.
배열. 있을지도 배열에 힘은 모든 결국. 결국 모든 힘은 배열에 있을지도.
주차장에 줄지어 앉은 자동차 번호판 배열. 스포티파이 랜덤재생 플레이리스트 배열.
활자의 배열. 음표의 배열. 동작의 배열. 픽셀의 배열. 이미지의 배열.
3.
배열. 나열. 정렬. (나는 가끔 한국어가 밉다)
배열은 나열도 아니고 정렬도 아니다. 나열은 배열도 아니고 정렬도 아니다. 정렬은 나열도 아니고 배열도 아니다.
<배열> : 일정한 차례나 간격에 따라 벌여 놓음.
예) 배열 나열 정렬 배열 나열 정렬 배열 나열 정렬 배열 나열 정렬
<나열> : 죽 벌여 놓음.
예) 나열 나열 정렬 배열 배열 정렬 나열 배열 정렬 정렬 배열 나열
<정렬> : 가지런하게 줄지어 늘어섬.
예) 나열 나열 나열 나열 배열 배열 배열 배열 정렬 정렬 정렬 정렬
4.
왜 나열도 아니고 정렬도 아니고 배열인가?
나열에는 의지가 없다. 나열은 무력하다. 또는 무책임하다.
정렬에도 의지가 없다. 나열에 비해 그럴듯해 보일 뿐, 정렬이 삼는 기준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잡힐 수 없는 것들을 잡힐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려 한다면. 힘을 얻고자 한다면.
5.
나는 가끔(아니 자주) 완결된 글을 쓸 자신이 없어 단상들을 꺼내 놓고 배열한다.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처음부터 계획한 것처럼 숫자를 매긴다. ‘아이폰 이야기’처럼. ‘까눌레’처럼. ‘배열’처럼.
이 방식은 편하다. 나는 편하게 힘을 얻는다.
6.
그리고 나는 이 글을 거꾸로 읽어보라고 권한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의미 없이.
오해 말자. 의미는 애초에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힘은 언제나 그랬듯 당신들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