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규탄 성명

"본질의 파편조차 못 된다"

by 백창인

평소에는 외향적이지만 가끔 심각하게 고독해진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살면서도 쉽게 주눅이 든다. 딱 자기 얘기라면 웃어넘기자. 심리 테스트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이라고 한다. 이 시시콜콜한 사실은 인간이 어떠한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남에게 빈말과 싫은 소리를 둘 다 하지 못한다. 그래서 솔직하지만 솔직하지 못하다. 혼자 걷는 게 좋지만 학교를 혼자 다니기는 싫다. 그래서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못하다.


성향을 물으면 곤혹스러워진다. 기분을 물어도 곤혹스러워진다. 나 자체도 어떤 속성으로 규정할 수 없거니와, 스쳐가는 내 인상도 어떤 속성으로 규정할 수 없다. 내가 무표정이면 많이들 기분 안 좋은 일 있냐고 묻는다. 생각이 많아서 그렇다고 대충 둘러댄다. 사실 종일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를 오갈 뿐이다. 내 얼굴에 여과기가 안 달려 있을 뿐이다.


인상을 본질로 착각하지 말자. 그것은 본질의 파편조차 못 된다. 인상을 규정하지 말자. 우리는 규정할 수 없기에 존엄하다.


18.01.1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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