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 도리가 없는 인간다움"
당구만큼 확실한 스포츠도 없다. ‘공은 둥글다’는 말은 흔히 스포츠의 불확실성을 찬양하는 데 쓰이나, 당구가 이 명제를 보기 좋게 뒤집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가장 둥근 공이야말로 당구공이다. 오각형과 육각형의 엉성한 조합, 움푹 팬 곰보투성이는 둥근 축에도 못 낀다. 당구공의 순수한 원형이 역설적으로 확실성을 담보한다. 이때만은 프로나 아마추어 할 것 없이, 당점이니 각도니 하며 집단 지성을 보탠다. 그들은 명의가 집도하듯 손끝에 모든 신경을 쏟는다. 본인들이 허공에 그려 보인 경로를 당구공이 쫄래쫄래 따라갈 때 그들은 완벽한 쾌감에 경도된다. 옥 같은 당구공에 흠이 날세라 주인장은 봉황의 알인양 공을 닦고 또 닦는다.
당구만큼 불확실한 스포츠도 없다. 공이 목표물을 아깝게 빗나갔을 때 집단 지성은 각도나 힘을 논한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쳤어야 한다며, 조금 더 세게 쳤어야 한다며. 의미 없는 조언은 불확적성의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충분히 세게 때리지 않으면 위치를 알 수 없고, 충분히 세게 때리면 위치가 달라진다. 양옆으로, 앞뒤로 떨어진 거리만을 보고 어찌해야 한다며 재단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당구의 기묘한 본질은 무엇인가. 성공했을 때 질서를 믿고 실패했을 때 혼돈을 믿는다. 이게 당구의 본질이다. 양 극단 사이에서 무력하게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인간다움. 그래서 당구만큼 인간적인 스포츠도 없다.
18.08.05.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