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서울, 2018년 여름

"서울에서 소외되는 우리"

by 백창인

잔이 부딪는 소리는 점점 둔탁해졌다. 고개를 숙이는 동기가 하나 둘 늘었다. 술집 조명이 어두워서 핸드폰 빛이 더욱 성가셨다. 화장실을 갔다 온다던 친구는 십 분이 넘도록 보이지 않았다. 부대찌개가 자작하게 끓는 줄도 모르고 버너는 연신 타올랐다. 종강 파티가 시시한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다.


꽃샘추위가 막 시작된 개강 파티 즈음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새롭고 따뜻했다. 날씨는 풀렸는데 관계는 왜 식어갈까. 과거의 유대감을 기대하며 참석한 파티에는 연례행사의 의무감만 남아 있었다.


기숙사에 가자니 아쉽고 더 놀자니 할 게 없었다. 통학하는 친구 한 놈도 같은 생각이었다. 막차가 막 끊긴 참이라 곧바로 택시를 타기에는 분한 모양이었다. 다른 술집을 들어갈까 당구를 칠까 노래를 부를까 했지만 무엇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 헛헛함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너무 얕은 수였다. 차라리 온몸으로 부비고 싶은 것이었다. 뾰족한 수가 없이 밤거리를 걷던 중, 그것 자체가 뾰족한 수가 됐다. 우리는 걷기로 했다. 그냥 걷기로 했다. 이제는 탈 수 없는 지하철 2호선의 방향을 따라 밤새 걷기로 했다.


종강이라 어깨에는 별다른 짐이 없었고, 폭염을 모르던 한국의 초여름은 그런대로 선선했다. 근처 편의점을 베이스캠프로 정하고, 모 프로그램을 본따 여정에 ‘걸어서 서울 속으로’라고 이름 붙였다. 원정 놀이에 빠져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서울의 길은 지하철 철로만큼 평탄치 않았다. 낙성대에서 사당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가팔랐지만 넘을 만했다. 진짜 고비는 서초 가는 오르막길에 있었다. 저 뒤로 보이는 게 오르막길의 끝이겠거니 하고 그만큼 가면, 오르막길은 무지개처럼 꽁무니를 내빼는 것이었다. 따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어떠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힘이 풀린 다리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늘 밤은 걸어야만 했다. 그것은 의무감이라기보다 운명에 가까웠다.


새벽 세 시가 막 넘어가, 이때까지 깨어 있는 청춘은 없을 거라 자부하던 참에 전화가 걸려왔다. 영상 편집을 하느라 종강 파티에 참석조차 못한 친구였다. 친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어디냐고, 아직 놀고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지금 막 교대인데 오려면 오던가, 하며 눈치없이 킬킬댔다. 그러더니 친구는 택시를 타고 교대까지 오겠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고, 얼마 후에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진짜로 했다. 느닷없이 원정대가 한 명 늘었다. 마침 이야깃거리도 떨어지던 참이라 잘 된 일이었다. 대화는 편집 업무의 고충에서 관계의 어려움으로 넘어갔다. 그 친구는 고된 일 때문에 죽어가던 게 아니었다. 작은 실수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일에 상처를 받은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이제 ‘걸어서 서울 속으로’라는 이름은 희미해지고,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서울의 밤에 우연히 시작한 대화. 새롭게 합류해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 서울에서 소외되는 우리와 우리가 소외하는 서울. 2018년 여름은 그 해 겨울과 조금이라도 달라졌나.


새벽의 끝자락에 도착한 강남역은 아직 불빛이 많았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원정을 자축할 겸 대패삼겹살 집에 들어갔다. 불판 위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서울의 여름밤이 타들어갔다. 아무도 모르게 하늘 위로 동이 트고 있었다.


18.09.14. 씀

매거진의 이전글62. 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