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이 내가 되는 글"
열아홉은 산을 오르고 스물은 바다에 있다. 열아홉은 오르막길이 힘들다. 하지만 버티고 오르면 정상을 발밑에 둔다. 일방향성은 구속인 동시에 선물과도 같다. 스물은 이따금 찾아오는 파도가 아니라면 둥둥 떠있다. 하지만 방향 없는 표류는 평화는커녕 공황만 안긴다.
스물은 훌륭한 등산가지만 아직 훌륭한 항해가는 못 된다. 그래서 정상을 맛봤다는 오만은 보기 좋게 사라진다. 오만의 빈자리를 무력함이 채운다. 크게 노를 저어보고 배는 분명 움직인다. 하지만 망망대해에서는 같은 곳을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느낄 뿐이다. 스물의 배는 골드버그 장치와도 같다. 가장 사소한 것을 바꾸기 위해 온몸을 쏟아부어야 한다. 스스로가 무너질 때까지 소모하고 그 무너짐을 정체성으로 삼는 게 스물이다. 스물은 자살을 숙명처럼 여긴다.
바닷물은 짜고 생선은 잡기 어렵다. 그래서 스물은 보름달과 한강물을 먹고 자란다. 스물은 기약도 없는 낭만에 취한다. 스물은 아주 답도 없어버리게 행복한 우울함을 뱉는다. 그리고 그 우울함에 공명할 또 다른 스물을 찾는다. 스물하나를 찾고 스물둘을 찾는다. 스물셋 아니 서른 마흔도 좋다. 스물은 선장을 원하지는 않지만 반대편에서 키를 함께 잡아줄 동료를 원한다.
스물은 가득하게 적셔진 영화를 본다. 스물은 동전 몇 푼에 노래를 부른다. 스물은 바보처럼 걷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스물은 인스타그램으로 지난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스물은 글을 쓴다. 이 글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스물이 될 수 있는 한 글을 쓰고 만다.
나는 스물이다. 하지만 스물은 내가 아니다. 스물이 내가 되는 글을 쓰련다. 사람이 내가 되는 글을 쓰련다.
18.11.1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