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by 백창인

나는 지난 여름을 사랑했다. 아주 어릴 적 같은 학원을 다녔다가 얼굴만 알고 지내던 너를 다시 만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고작 캔맥주에 호수공원에서 쓰러졌음에도 그날의 대화는 선명하다. 우리는 삶과 아픔과 예술을 이야기했다. 네가 이 표현을 좋아할지는 모르겠으나, 막 시작했던 나의 소설도 예술로 친다면 우리 둘은 모두 예술을 했다. 예술을 할 수 있는 삶은 따로 있을까. 아픔의 경중을 따지는 일이 바보같음을 알면서도, 뻔히 보이는 아픔의 차이는 예술과 무관한 것일까. 너는 봉준호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일 <기생충>은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이들에게 축하받는다. 너는 나의 은근한 기대감을 어떻게 생각할까.

글쓰기는 이제 나의 삶인데도 아픈 글을 볼 때면 어김없이 무너진다. 내가 온전히 부비는 것은 오직 내 삶이고 그 안의 불행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면에서 기득권이었던 나의 삶은 전시 가치가 있을까. 기만을 혐오하는 나는 자기혐오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공유된 글쓰기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을 늘 안고 산다. 그 두려움 때문에 내 자신을 잃을 수 있다는 친구의 우려는 정당한 것일까.


20.02.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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